어릴 적 읽던 동화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어릴 땐 알지 못했던 행간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동화에서 발견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발견하는 코너, 그 첫 작품으로 이솝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함께 목표 달성의 이야기를 해보자.
글_박승억(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해마다 연초가 되면 늘 그래왔던 습관처럼 단단한 결심을 한다. 결심은 대개 어떤 목표와 관련이 있다. ‘다이어트’나 ‘운동하기’처럼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버킷리스트 목록 중 두 개 해보기’ 같은 것들이다. 인생의 중요 국면에서 계획한 일들이야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문제는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들이다. 일상생활의 만족도는 바로 그 ‘사소해 보이는 목표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건강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공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목표를 세운 사람 중에 꽤 많은 사람이 작심삼일의 함정에 빠진다. 물론 위안거리는 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인생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으니까. 작심삼일에도 빠져 봐야 돌아올 연말에 적당히 후회도 하고, 다시 올 새해에 새로운 결심도 할테니까. 무척 인간적이다. 다만 이것이 ‘습관’처럼 되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을 의지 박약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그것은 시나브로 나의 자존감을 좀먹는다.
이솝의 이야기로 알려진 우화 하나가 오늘의 주제에 대해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고양이와 쥐 이야기다. 꾀 많은 쥐들은 나름 큰 목표를 세운 적이 있었다. 성질 고약한 동네 고양이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민주적인 쥐들답게 숙의와 토론을 거듭하던 중 마침내 누군가에게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솟아 나왔다. 살금살금 다가오는 고양이의 등장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되지 않겠는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어주자! 딸랑거리는 소리가 경고 방송이 되어 쥐들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결같이 입을 모아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송했다. 그러자 신이 난 동료들을 향해 신중한 생각을 잘하는 쥐가 물었다. “자, 그럼 누가 그 성질 고약한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죠?” 신중한 쥐의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회의는 그날로 종료되었다.
쥐들이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너무나 절박하면 아무리 위험한 행동이라도 나서기 마련이다. 우리가 작심삼일에 빠지는 것은 대개 계획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당장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심삼일을 피하고자 한다면, 절박해야만 한다. 절박한 상황만큼 좋은 동기부여는 없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행동에 나선다고 해서 모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일부러 절박한 상황에 빠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우리가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까닭은 절박한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고 그런 것이 아닌가.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방법이다.
방법이 없으면, 아무리 절박해도 목표를 이루기 쉽지 않다.
신중한 쥐의 질문은 그런 점에서 신중하지 못했다. 순서를 잘못 잡은 것이다. ‘누가 나서겠는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를 먼저 물었어야 한다. 방법이 나오면 지원자가 나올 수도 있다. 방법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희생자부터 모집했으니, 논의는 시작도 못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한 말의 형식을 빌려 말하자면, 의지 없는 방법은 맹목적이지만 방법 없는 의지 역시 공허하다. 물론 ‘누가?’라는 질문은 ‘누가 어떻게?’라는 방법의 문제를 포함한 것이겠지만, 질문이 모호하면 생각도 모호해진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 전략은 길 찾기 내비게이션을 모방하는 것이다. 거쳐 가야 할 이정표들을 분명히 하되, 각각의 이정표들은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하위 목표들이어야 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지도가 명료할 때, 계획과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
만약 불가피한 상황으로 원래의 경로에서 일탈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그려 놓은 지도가 있다면 우회로를 찾기도 쉽다. 목표와 방법이 모호한 것, 다시 말해 ‘주먹구구’는 작심삼일을 향한 지름길이다. ‘매일 40분 동안 운동하기’가 아니라, ‘스쿼트 100번, 런지 30번, 팔굽혀펴기 30회’로 해야 하고, ‘좀 더 부지런해지자!’가 아니라 ‘몇 시 취침, 몇 시 기상’으로 해야 한다. 또 각각의 하위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전략을 세울 수 있다면 더 좋다. 세부 목표 달성 시 나를 칭찬하는 보상을 정해두고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 뇌는 도파민을 좋아한다. 도파민은 중독을 일으키는 호르몬이다. 목표 달성 시 받게 되는 보상은 내 도파민을 분출시킬만 해야 한다.
목표와 방법의 구체성만큼, 아니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관한 앎이다. 의외로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요즘 MBTI 성격유형검사가 유행인 까닭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보상이 나의 도파민을 분출시켰는지, 또 작년에 작심삼일에 빠진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해보면, 나에게 어떤 약점이 있고 또 어떤 것들이 장애물인지도 알 수 있다. 계획을 실행할 당사자에 대한 앎이야말로 목표 달성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다. 나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제대로 걸을 준비도 안 되었는데, 마라톤을 목표로 삼는 것은 작심삼일을 향한 강한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이제 사소해 보이는 목표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보자. 먼저 최종 목표를 위한 단계적 세부 목표들을 세우고, 나의 현실 조건을 냉정하게 분석한다.
시간 계획을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협하는 장애물도 분명히 한다. 각 단계에서 성공 시 내가 좋아하는 보상도 생각해 둔다.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스스로를 격려하고 관리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한 성공 경험은 자존감의 원천이다. 물론 실패해도 좋다. 실패한 경험을 분석할 수만 있다면 그것 역시 자산이다. 사소한 일상의 목표들을 달성해서 자신감을 충만하게 하는 것만큼 가성비 높은 인생의 자산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방법을 강구하면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방울을 단 고양이가 있는 것을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성질 고약한 고양이를 좋아하는 동네 사람에게 고양이 방울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아니면 고양이 머리가 들어 올 수 있는 쥐구멍에 신축성 좋은 밴드로 만든 방울을 걸어놓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