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홍규(前 한전KPS 원자력연수원장)
변화와 혁신은 창의적이다. 그런데 창의적인 것은 실패를 많이 동반한다.
그러므로 창조적인 실패를 사람이나 조직은 기피하고 두려워하면 안 된다.
창조적인 실패는 긍정적인 실패이며 성공에 이르는 실패이다.
- 안영진 ‘변화와 혁신’ 중에서
세상에는 별난 박물관이 많다. 그중에서도 2017년 사무엘 웨스트(Samuel West) 박사는 혁신을 위한 조직문화를 연구하면서 기업의 실패 사례를 주목하고 글로벌 회사의 실패 사례를 모아 스웨덴 헬싱보리에 ‘실패박물관(Museum of Failure)’을 세웠다.
기업들이 혁신적이라고 내세운 제품들 중에서 실패한 사례들을 모은 전시장이다. 미국 미시간주에도 로버트 맥매스(Robert McMath)가 1990년에 세운 ‘실패박물관’이 있다. 정식 명칭은 신제품 공작소(New Product Works)다. 그는 1960년대 말부터 취미로 수집한 신제품을 수집하여 진열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제품의 대부분이 실패 제품으로 전락하여 소멸되었다고 한다. 애플, 다이슨,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들이라고 항상 성공만 얻은 것은 아니다. 신제품이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아 실패한 사례는 많다. 미국의 유명한 식품회사 하인즈의 초록색 케첩, 펩시의 무색콜라, 코카콜라의 커피 맛을 내는 콕 블랙(Coke Black)을 비롯해서 소비자의 큰 사랑을 받았던 에이즈사탕(Ayds Candy)은 공포의 에이즈(AIDS)라는 질병 이름과 유사하여 외면받은 사례이다.
실패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시장을 바라보는 기업의 판단과 투자는 항상 고객의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패는 성공을 향한 과정이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147번의 실패를 거듭했으며, 라이트형제는 비행기를 발명하기까지 805번의 실패를 맛보았다. 거듭된 실패가 축적되어 획기적인 발명품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지난해 창업 활동 전반에 걸친 자율성 및 독립성을 보장받은 사내벤처인 ‘KPS SHE-Tek 팀’이 출발하였으나 활동 결과의 성공과 실패의 경우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사내벤처 선정 시 성공확률이 높은 안건만이 채택되었다면 혁신적인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취임 시 “성공 가능성 80% 이상 연구에는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뻔한 연구에서는 얻을 것이 별로 없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과제에 대한 도전은 항상 부담이 따른다. 원하는 결과를 기한 내에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되어 있다면 중압감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기피한다면 나와 조직 내부로부터 변화의 바람은 불지 않는다. 변화(Change)는 기회(Chance)를 낳는데 기회의 창이 닫히는 셈이다.
실패는 나쁜 결과가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도 자기 소유의 회사를 4번 파산시킨 실패 전력이 있고, 중국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8번의 실패 끝에 성공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는 것을 암시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실패로 인하여 재기불능의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도전에 소극적이고 쉽게 포기한다. 실패를 되풀이한 트럼프와 마윈도 한국에서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을 거라는 말도 있다. 포기하지 않는 도전이 오늘의 그들을 키워냈다.
비일상적인 일을 벌이면(특히 예산이 수반되는) 각종 감사의 표적이 된 경험이 있다. 이 같은 경험이 쌓이면 매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고, 실패와 감사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조직 발전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창의적인 발상이 바탕이 되는 혁신은 꿈도 꾸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입으로만 혁신을 외치게 된다. 혁신에는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며 성공은 실패와 창의성을 바탕으로 싹을 틔운다. 글로벌 기업의 성공사례도 실패의 축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실리콘밸리의 세계적인 ‘페일콘(실패공유 모임: FailCon, Failure Conference)’은 실패를 포용하는 풍토에서 탄생했다. ‘실패의 자산화’가 축적되어 성공을 이끌어내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힘이다.
실패 사례는 전 직원이 공유하여 왜 발생했는지를 분석하고 논의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 유사한 사례에서는 반복된 실수를 피하고 축적된 경험으로 성공의 빗장을 열 수 있다. 본사 현관의 조그만 공간이라도 자신의 실패담을 전시하고 공유해보는 ‘포스트잇 참여공간’을 마련하여 실패의 디딤돌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