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승억(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맛있는 음식이 주는 행복감은 즉각적이다. 그래서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또 때로는 긴 기다림을 각오하고 맛집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만약, 내가 황제라도 되어서 언제든 손만 뻗으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때도 같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어느 날에는 그 음식 때문이 아니라 대기줄이 짧아서 더 행복한 경우마저 있다. 행복감을 선사하는 것들은 대개 쉽게 잡히지 않는 것일 때가 많다. 그래서 행복의 크기는 기다림의 크기에 비례하곤 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오늘’은 어떨까? 매일 만나는 오늘이므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찾아오는 나날이므로 그저 무심하게 볼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날이 그날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타임슬립 드라마처럼, 그때 내가 뭔가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오늘이 오늘 같지 않고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렇게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가 전하는 이야기를 생각해볼 만하다.
옛날 어떤 마을에 가난한 나무꾼이 살았다. 이 나무꾼은 성격이 급한 데다 입도 거칠었다. 그래서 늘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곤 했다. 그날도 혼자서 힘들게 나무를 베다가 불현듯 화가 치밀었는지 하늘을 향해 욕을 하며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지 떠들어 댔다. 그러자 번개가 치며 제우스가 나타났다.
제우스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나무꾼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올림포스로 돌아갔다. “이제 네 입에서 나오는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마!”
비로소 정신을 차린 나무꾼은 기분이 우쭐해져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평생 한결같이 퉁명스러운 아내에게 그날 겪은 일을 설명해 주자, 아내는 신중하게 소원을 빌어야 하니, 잘 생각해보고 내일 아침에 소원을 빌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산에서 해 온 나무를 난로에 집어넣고 오래된 소파에 몸을 묻은 나무꾼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큰 부자가 되는 꿈, 권력을 가진 왕이 되는 꿈, 모든 소원이 다 멋져 보였다. 아내는 아내대로 상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긴장이 풀리고 상상에 빠져 있다 보니 이내 배가 고파졌다.
아무리 멋진 소원이라도 배가 고프다면야 무슨 소용일까. 나무꾼은 중얼거렸다. “소시지나 먹었으면 좋겠군.” 그러자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져 버렸다. 난롯가에 나타난 먹음직스러운 소시지를 보며 나무꾼과 아내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아내 역시 남편 못지않게 입이 거칠었다. 온갖 저주의 말로 나무꾼을 비난하자, 나무꾼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젠장, 저놈의 소시지가 못된 저 마누라 코에나 붙어버렸으면 좋겠네.” 그러자 두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다. 나무꾼과 아내는 완전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제 남은 소원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소원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내의 코에서 소시지를 떼어내는 것이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서 나무꾼이 다른 소원을 빌었다면 그 둘은 행복해졌을까? 1990년대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리셋 증후군’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컴퓨터가 버벅거리거나 게임에서 뭔가를 잘못했을 때 다시 시작하기 위해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리셋 버튼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때로는 정말 리셋 버튼이라는 것이 있어서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필자가 그 나무꾼이었다면, 첫 번째 소원으로 그 리셋 버튼을 달라고 말했을 것만 같다. 정말로 신중하게 소원을 말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사달이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여 그런 리셋버튼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끊임없이 리셋 버튼을 누르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리셋 버튼을 누르려는 까닭은 ‘오늘’이 달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2013년도에 개봉한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운 좋은 사람이다. 수없이 다른 오늘을 만들기 위해 과거로 되돌아갔던 그가 마침내 얻은 행복의 지혜는 이렇다.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맞이한 오늘이 얼마나 새롭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것.
사람이 인생에서 겪는 일 중에 가장 고약한 것 하나를 고르라고 할 때 앞자리를 놓치지 않을 것이 바로 권태다. 권태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희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 같은 오늘이고, 오늘 같은 내일이라면 그것은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허구한 날 주야장천으로 그것만 먹는 일에 다를 바 없다.
오늘의 값어치는 대개 남은 날의 수에 반비례한다.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사람에게 오늘 하루는 얼마나 소중할까? 아마도 그는 수없이 많은 오늘을 보내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햇볕의 따사로움이 얼마나 새로운지, 겨울을
보내고 올라오는 새순의 초록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오늘은 결코 예전의 오늘이 아니다. 이렇게 삶의 충만함은 평범한 오늘을 특별한 오늘로 바꾸는 우리의 시선에 달렸다.
시간이 끝없이 흐르는 한 인생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 그런데도 그날이 그날 같은 까닭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새로운 발견은 오늘을 풍요롭게 해 준다. 나의 오늘은 분명 내 과거의 모든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빚어낸 것이다. 오늘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아마도 과거의 내가 잘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묘미는 언제나 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 오늘이 의미 있다면 과거의 모든 선택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과거의 모든 순간으로 돌아가 쉴 새 없이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는 오늘을 반짝이게 할 일을 찾는 편이 훨씬 더 가성비가 좋다. 오늘이 충만해지면 내일도 그러리라는 것은 덤이다. 우리가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오늘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이유다. 소시지로부터 해방된 나무꾼 부부에게 추천해주고픈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