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홍규(前 한전KPS 원자력연수원장)
바쁜 사람은 바보이다. 그는 항상 중요한 일은 나중에 하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왜 그렇게 바빴는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중요한 일은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언제나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잠시 숨을 길게 내쉴 때에만 생각난다. 앞만 보고 죽을 둥 살 둥 뛰다보면 아이들은 커지고, 늘어난 체중에 귀밑머리가 하얗다. 그렇게 뛰었건만 돈은 언제나 부족하고 이루어놓은 것은 없다. 왜 그렇게 바빴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 중에서
한창 일에 얽매여 허덕이던 고참 초급간부 시절. 일이 우선이었던 워커홀릭(Workaholic)에 빠졌을 때 운명처럼 만난 책이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1998)’이었다. 직장인들의 자기혁명 비전을 제시하고 개인과 조직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것을 역설한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계발서를 뛰어넘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하루 중에 ‘나’보다는 일의 비중이 더 컸고 성실했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은 소홀히 하였다. 왜 그렇게 바빴을까?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저자는 지적한다.
“그저 바쁜 사람은 위험에 처한 사람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영역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 또한 매우 위험하다. 단순 반복적인 일로 매일을 보내는 사람 역시 위험하다. 그가 진정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중요한 일에 쓸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시간 또한 자산이다. 투자자들은 위험분산 차원에서 어느 곳에 올인하는 것을 꺼린다. 근무시간 중에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한 업무몰입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퇴근 후에도 업무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불행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나의 초급간부 시절의 시간 관리는 낙제점이다.
일과 자신만의 시간 관리는 삶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잃었을 때 ‘나’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은 삶의 일부분이다. 업무와 불편한 조직의 관행과 싸워 세상을 바꾸는 일도 자신의 삶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글러스 태프트(Douglas Taft) 전 코카콜라 회장은 널리 알려진 2000년 신년사에서 “인생이란 두 손으로 5개의 공을 움직이는 저글링(손에 잡을 수 있는 2개 이상의 물체를 번갈아 던져 묘기를 부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공은 일, 가족, 건강,친구, 영혼(자신)인데, 일이라는 공은 고무와 같아서 떨어뜨려도 곧 튀어 오르지만, 나머지 공들은 유리 같아 떨어뜨리면 긁히고 깨지고 흩어져 다시는 전처럼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다섯 가지가 균형을 이루도록 애써야 한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지는 말라”고 조언하였다.
멀리 보면 업무가 많고 복잡할수록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자기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더 능률적이다. 작년의 사보 4, 8월호 설문조사를 보면 자기만의 시간 활용을 엿볼 수 있다.
응답자의 57.9%가 헬스, 등산, 요가, 골프 등 움직이는 취미를 선호하며, 충분히 쉬지 못하는 이유는 66.3%가 육아, 집안일, 공부 등 다른 일이 많고, 업무가 너무 많음을 꼽고 있다. 하루 중 오롯이 ‘나’와 마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루를 보낸 ‘나’와 미래의 ‘나’를 마주한 적이 있는가. 현재의 시간 속에 아쉽게도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다. 변화가 없는 현재의 ‘나’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미래에 투영된다. 투영된 미래가 변화 없는 현재에게 꾸짖는다. “인생을 낭비한 죄는 유죄이다”
준비 없는 일상, 뭔지 모르게 바쁘게 사는 하루, 나와 마주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생존은 가능할까. 변화를 부르짖지만 변화가 없는 조직은 생존이 가능할까. 윤석철 교수는 경영학계의 고전으로 칭송받는 명저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Principia Managementa)’에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생존부등식을 성립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가치(V) > 가격(P) > 원가(C)
기업의 생존 여부는 상품의 가치를 높여야 생존할 수 있고, 이것은 두 가지 부등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느끼는 제품의 가치(Value)가 가격(Price)보다 크고, 가격은 생산자가 부담하는 원가(Cost)보다 커야 한다’는 논리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의 가치가 지불한 가격보다 커야 이익이 생기고,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의 가격이 원가보다 커야 이익이 생기므로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가치(V) > 가격(P)의 관계는 기업의 효과성(Effectiveness)에 의해 좌우되고, 가격(P) > 원가(C)의 관계는 기업의 효율성(Efficiency)에 좌우된다. 효과성을 높이려면 창조성(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창조하여 제공하는 능력)이 발휘되어야 하고, 효율성을 높이려면 생산성(기업의 원가 절감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기업이 생존하려면 제공하는 상품 가치는 높이고, 원가를 낮추어야 한다. 발전정비산업계에서의 생존과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고객의 만족 수준을 뛰어넘는 고품질의 완벽한 정비와 지속적인 원가절감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것이 미래의 경쟁력을 보장하는 준비요소이다.
발전 정비산업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이다. 발주사 입장에서는 그들이 지불하는 공사비에서 얻는 가치가 클수록 이득이 될 것이고, 수주사 입장에서는 공사를 시행하는 데 들어가는 총원가보다 공사비가 커야 이득이 된다. 이 말은 발주사는 정비공사를 시행한 수주사에게 원가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수주사는 발주사로부터 받는 가격을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함을 의미한다. 무엇으로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가치를 높여줄 창조성을 가로막는 조직내부의 요인들은 많다.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조직문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 발칙한 상상을 억누르는 관습, 그물망처럼 얽힌 낡은 규정, 성과없는 바쁜 하루, 나를 바라보지 않는 시간들이 모여 창의력을 잃게 만든다.
개인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나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바쁜 일과 중에도 자기발전을 위한 노력을 바탕으로 매달 받는 월급 이상의 가치를 회사에 제공해야 한다. 지속성장의 두 축인 원가절감과 창조성 발현의 시작은 결국 개인이다. 높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이고 오늘(Present)은 곧 선물(Present)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 부른다. 오늘이라는 선물 상자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 충족됐을 때 비로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