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승억(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뭐라고 하지?’ 어떻게 말해야 상대에게 내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는 언제나 고민거리다. SNS라는 혁신적인 의사소통 기술이 발전되어도 마찬가지다. 도리어 비대면 상황이 많아지면서 적절한 의사소통은 점점 더 중요한 능력이자 숙제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화두라는 직장 내 세대 갈등 역시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에서 올 때가 많다.
오랜 옛날 한 나무꾼이 산에서 굶주린 듯 보이는 호랑이를 만나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 하지만 워낙에 침착하고 기지가 있던 나무꾼은 호랑이를 보고 넙죽 엎드리며 “형님”하고 불렀다. 의아해하는 호랑이에게 나무꾼은 평소 어머니께서 너의 형이 어릴 때 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꿈에서 보니 호랑이가 된 듯하니 산에서 호랑이를 보면 네 형님인 줄 알고 인사를 올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 형님. 이 산중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습니까. 제가 모실 테니 어서 어머니를 뵈러 갑시다.”
호랑이는 그 말이 참말이라 믿었지만, 그 모습으로 사람 사는 데로 갈 수는 없었다. 함께 산을 내려가자는 나무꾼의 청을 거절한 뒤, 달마다 돼지를 잡아 집 앞에 가져다 놓을테니 그걸로 어머니를 봉양하라고 일렀다. 타고난 기지로 목숨을 구한 나무꾼은 다음 달부터 실제로 호랑이가 물어다 준 돼지로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호랑이도 더는 돼지를 가져다 놓지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꾼은 산에서 새끼 호랑이들을 만났는데, 그 호랑이들의 꼬리에 삼베가 매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 뜻을 물으니, 호랑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하기를, “우리 할머니는 본래 호랑이가 아니고 사람이셔서 아버지가 할머니를 돼지로 봉양하셨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가 돌아가셔서 삼베를 매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그 이야기를 듣고 호랑이의 의리와 효성에 감복하여 크게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다.
일상 생활에서든, 직장 생활에서든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괴로울 때가 많다. 꼼짝없이 인생을 ‘조기 퇴직’해야만 했을 상황에서 발휘된 나무꾼의 기지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무꾼이 호랑이의 호의를 얻어낼 수 있었던 까닭은 이야기를 호랑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외로움을 공감해주니 호랑이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는 대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주인공은 ‘나’다. 지평선이 ‘나’의 시선이 빚어내는 세상의 테두리이듯, 내가 말하므로 곧 내가 세상의 중심이기 쉽다. 서로의 시선이 다르면 지평선의 범위가 달라지듯이,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서로 다른 지평선이 중첩되는 과정이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는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을 ‘지평융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계가 마찰음 없이 하나가 되기 쉬울까? 타협점을 찾는 것이 결국에는 서로에게 득이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무꾼의 지혜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문제를 피하고 정서적인 소통을 먼저 시도한 데 있었다. 수사학적 관점에서 의사소통에는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그 첫째는 로고스(logos)로 대화의 핵심 내용이자 이성적으로 따져보아야 하는 내용이고, 둘째는 파토스(pathos)로 대화하는 사람들 상호 간의 정서적인 공감대 문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에토스(ethos)로 당사자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적 관습이나 예의의 문제를 말한다. 합리적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로고스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이야기다. 현실에서 그 로고스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선행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바로 파토스와 에토스다. 상대가 당연시 하는 문화적 관습을 존중하지 않고, 또 상대와의 정서적 공감대도 마련하지 못하면, 아무리 합리적인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로고스가 물이라면 파토스와 에토스는 그 물이 흐를 수 있는 물길에 비유할 수 있다. 물길을 먼저 내야 물이 제대로 흐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잘하고 설득도 잘하는 사람들은 상대와 공감대 마련하기를 중시한다. 또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한다. 동료와 함께 팀을 이루어 과제를 해야 한다면, 이러한 의사소통의 기술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기술의 이름이 다름 아닌 ‘배려’다. 나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려고 하는 것. 이것이 상대의 마음을 여는 기술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무리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이 안 되는 경우는 정말 극소수다. 만일 내게 그런 예외적인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내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호랑이 형님’ 이야기가 그저 동화라면, 실화도 있다. 경상남도 구미시 산덕면에는 의우총이 있다. 호랑이에게 습격받은 주인을 구한 소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 김기년이라는 사람이 밭에서 호랑이에게 습격을 받았는데, 그때 옆에서 일하던 소가 호랑이와 싸워 주인을 구했다고 한다. 정서적인 교감의 힘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예다. 설득하고자 한다면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한다. 물론 그 신뢰는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쌓인다. 중요한 것은 그 배려가 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상대의 관점에서 배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해 왔는데 손해만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관점을 생각해보자. 배려는 받는 쪽에서 느끼는 것이지, 하는 쪽에서 말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