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ERGY

한 줄 마음산책

생존하려면 변화하라


글_박홍규(前 한전KPS 원자력연수원장)

앞으로 다가오는 수십 년은 모든 사회, 조직, 개인 모두가 전에 없던 새로운 방법으로 적응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다행히 이 모든 혼란은 도전과 기회를 같이 가지고 온다. 특정 기관의 밝은 전망과 위험의 균형은 그 조직의 적응능력에 달려 있다. - 게리해멀 ‘경영의 미래’ 중에서

만물은 항상 생멸하고 변화한다

요즘 세상은 불확실한 혼돈의 소용돌이 그 자체이다. 팬데믹,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상기후로 인한 세계 경제의 먹구름은 언제 걷힐지 가늠할 수도 없다. 기업의 생존환경은 과거와는 달리 변화의 깊이와 속도가 다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혼돈의 세상에서 번영하는 기업과 사라지는 기업은 항상 존재한다.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을 뛰어넘어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이 기업의 운명을 가른다. 여러 사례를 보면 변화를 외면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학창 시절에 영한대역(英韓對譯)으로 영어 공부에 인기를 끌었던 ‘리더스다이제스트’를 기억하는가? 이 회사마저도 인쇄 매체에서 인터넷 시대로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했다. 시대변화를 외면하거나 과거의 성공에 안주, 준비 없는 사업확장 등은 글로벌 기업의 몰락 원인으로 꼽힌다. 세상에서 바뀌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변화를 마주한 필름업계
세계 톱3의 엇갈린 운명

세계적인 사진필름 메이커의 3인방(후지, 코닥, 아그파 필름) 중에서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살아남은 기업은 후지 필름뿐이다. 1975년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날로그 필름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디지털카메라의 상용화를 억제하고 상당한 이윤을 얻어온 사진 인화 부문에 주력하였다. 1998년,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를 예측한 일본의 카메라 업계는 보급형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사진 촬영 후 사진관에 맡겨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필름카메라와는 달리 그 자리에서 사진을 확인하고 보정이 가능했던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은 아날로그 필름을 사양길로 내몰았다. 코닥의 수익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입지는 좁아져 2012년 파산 신청에 이른다. 아그파 필름은 1889년 흑백 필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고, 1959년에는 자동노출 기능을 지닌 사진기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아그파 또한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인한 매출 감소로 결국 2005년 파산했다. 최초·최고의 타이틀을 지닌 두 회사에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외면한 대가는 혹독했다.

특히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었음에도 아날로그 필름 사업의 이익에만 집착함으로써 시장 주도권을 잃게 되었다. 과거의 성공모델에 안주하고 시대변화를 외면함으로써 몰락한 기업 사례이다.

후지필름은 달랐다. 2003년 취임한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회장은 취임 전까지 회사 총이익 중 필름 부문 이익이 70%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탈(脫) 필름’을 선언했다. 필름 부문 인력감축과 설비, 유통망을 제거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회사의 핵심사업을 버리겠다는 결단을 어떻게 내릴 수 있었을까? 결심의 배경에는 실무진의 정확한 시장분석이 뒷받침되었다. 필름산업의 몰락을 예측한 가감 없는 보고서를 제시하였고, 경영진은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것이다(우리로 치자면 정비 부문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더불어 철저한 분석을 통해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 새 사업(액정표시장치(LCD) 패널, 화장품, 의약품 개발)을 발굴하였다. ‘脫 필름’을 했지만 ‘본업과 무관한 분야는 진출하지 않으며, 기존의 기술 역량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원칙하에 필름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을 활용하였다. 필름 제조시 필요한 얇고 균일한 막 제조 기술, 필름 생산 시 축적된 화학합성 기술, 필름 제작 시 습득한 영상기술 등이 그것이다. ① 얇고 균일한 표면을 유지해야 하는 필름 제조 기술은 LCD TV용 TAC(Tri-Acetyl Cellulose)필름 제조에 적용되어 시장을 독점하였고, ② 필름 재료인 단백질(콜라겐)과 필름 변색을 방지하는 화합물을 응용하여 노화 방지 화장품(아스타리프트)을 출시하여 그야말로 ‘대박’을 이뤄냈다. ③ 후지필름의 화학합성 기술을 접목한 제약(아비간: 에볼라바이러스 치료제)과 영상기술은 내시경과 초음파진단기 등의 의료기기 제조로 확장하게 된다. 시대변화를 마주한 세계 톱3 기업 중 두 기업은 지고, 한 기업은 성장·번영의 길을 달리고 있다.

미래는 오직 준비된 자의 몫

후지필름의 생존과 번영은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아내는 안목’과 ‘시장의 트렌드를 빠르게 읽고, 진솔한 자기진단과 과감한 변화실행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정부 정책변화에 대한 적응과 대응이 필요하다. 조직이나 개인들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진실은 오랜 불문율이다. 어제와 변함없는 오늘을 보내고, 변화 없는 미래를 맞이한다면 기대할 것이 없다. 환경 변화에 순종하기보다는 도전의 역사를 엮어가며 미래를 준비하자. 미래는 오직 준비된 자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