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ERGY

한 줄 마음산책

어쩌다 노인이 된
부모를 기억하며


글_박홍규(前 한전KPS 원자력연수원장)

자식들이 흔히 하는 오해는 우리 부모는 어떻게든 살아갈 거라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믿음이다. 자식들은 자신이 부양하고 있는 자녀에 대한 관심과 보호는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타인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부모는 외면한다.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하는 노년의 삶」(추기옥 저) 중에서

고령화 사회의 현주소

5월은 기억해야 할 가족 관련 행사가 많은 '가정의 달'이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서부터 시작하여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15일 ‘스승의 날’, 5월 16일 ‘성년의 날’, 5월 21일 ‘부부의 날’ 등이 빼곡하다. 그런데 유독 ‘노인의 날’은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2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엔이 정한 노인의 날인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어서 하루 뒤인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결정했다지만 노인을 위한 기념일마저도 5월의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서성인다.

통계청이 4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령인구(65세 이상)는 2020년 807만 명(16.1%)에서 2040년에는 1698만 명(35.3%)으로 두 배나 늘어난다. 20년 뒤 3명 중 1명은 노인이며 2048년엔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 은퇴 연령은 평균 72.3세로, OECD 국가 중에서 1위로 노인의 절반은 ‘곤궁’해서 퇴직 후에도 평균 13년가량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일해야 한다는 것이 극한 인생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노인들의 현주소이다. 고단한 노년이다. 또 농촌 46.8%, 어촌 40.5%가 65세 이상의 노인들만 남아 늙어가는 농어촌으로 변하고 있다. 가난과 외로움에 점점 외딴 섬이 되어가는 것이 통계가 보여주는 노년의 자화상이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는가

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많지만, 자식이 부모를 위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언제나 부모들은 말씀하신다. “바빠서 못 오는 거 안다. 다 괜찮아.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 과연 그럴까.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부모들의 말씀을 반대로 해석하면 옳을 듯 싶다.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어디 다니기가 힘들어. 괜찮지 못하단다. 보고 싶으니 아무리 바빠도 잠시라도 왔다 가렴”. 부모에게 생각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오직 자식이다. 그래서 너희가 힘드니 내가 힘들다는 말을 못한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갈망했듯이 늙어가는 부모들도 자식의 관심과 사랑을 원한다. 다만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더욱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의 심리적 정서적 신체적 변화를 이해하고, 부모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세밀한 배려의 돌봄이 곧 ‘보약’이다.

자식들이 부모 곁을 떠나 가정을 이루고 살다보면 부모는 관심 밖이기 쉽다. 어린 시절에 느낀 산처럼 높고 사자처럼 위엄이 가득한 아버지와 늘 품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분명한 슈퍼맨, 원더우먼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의 머리맡에는 알 수 없는 약봉지가 쌓이고, 깊어가는 주름과 흰머리가 가득하다. 드시는 약이 무슨 약이며 어떤 성분이며 언제부터 복용해 왔는지 알고 있는가. 대부분 나이들면 복합적인 질환 때문에 병원의 진료과마다 각각 복약 처방을 받는 경우에는 중복되는 약 성분이 병을 더욱 깊게 할 수도 있다. 괜히 역정을 내고 잊어버리는 것이 잦아지고, 걸음걸이가 느려지는 등의 부모들의 사소한 심리적·신체적인 변화를 우리는 무심코 넘겨버린다. 부모가 나이들면 신체나 인지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일상생활의 변화, 표정, 행동 하나하나에 세심한 관심을 두고 변화를 짚어내야 한다. 이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와 부모는 그렇게 노인이 되어간다.

노인은 비생산적인
잉여인간이 아니다

지난한 어려움 속에서도 젊음을 헌신하여 자식을 보듬고 가정을 지켜 온 노인이 된 부모들의 노고는 현실에 가려져 무기력한 존재로 비춰질 수 있다. 노인을 비생산적인 사회의 잉여 존재로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은 자기망각이다. 자식들은 부모들이 떠난 후에야 후회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달려가면 뵐 수 있는 부모가 계시다면 축복이다.

꽃이 피면 지고 잎이 돋으면 떨어진다. 삶이 그렇다. 자식을 키우며 어쩌다 노인이 된 부모처럼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