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경험의 확장이자 내가 아는 세계의 확장이다. 이 말은 곧, 책 한 권에는 작가가 경험한 세계가 담겨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서와! 공기업은 처음이지?>에는 <삼국지>를 좋아하고, 우리 회사에서 23년 동안 근무한 임재선 차장의 세계가 담겨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아들과 사회초년생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세계를 펼쳐준 임재선 차장을 만나봤다.
글_편집실 사진_김인규
안녕하세요. 전력사업처 사업기획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재선 차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뭔가에 흥미를 붙이면 상당히 몰입하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거의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캠핑을 즐겼고, 이후에는 분재의 매력에 빠져 베란다가 화분으로 가득한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읽은 책들, 특히 <삼국지>에 대한 감상을 이웃님들과 나누며 소통하고 있고, 더불어 루어낚시에 푹 빠져 매 주말이 아주 바쁘고 즐겁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공기업에 대해 소개한 책입니다. 두 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파트는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공기업의 특징에 대해 설명한 것이라면, 두 번째 파트는 취업에 성공한 공기업 신입사원들을 위한 직장생활 지침서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책들과 차이가 있다면, <삼국지>에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좀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지금 책의 컨셉으로 시작한 건 아닙니다. 원래는 <불편한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를 비교하는 글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했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출판사는 단 한 곳도 없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전문가 흉내를 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좌절 그 자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마이스터고에 다니는 아이들이 곧 취업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아빠로서, 그리고 직장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잘 아는 것과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의 공통분모를 찾은 셈이죠.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삼국지>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더하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삼국지>는 약 1,800년 전의 옛날이야기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마라”, 또는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도 하지 마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인생만사, 권모술수가 가득합니다. 제가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도 바로 “인사만사(人事萬事)”, 즉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직장생활 역시 인간관계라고 보면 <삼국지>는 직장인이 읽으면 좋을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때문에 공기업 신입사원을 위한 생활 지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삼국지>의 사례를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출판사에 투고했고 투고한 숫자만큼 거절을 당했습니다. ‘내가 책을 낸다는 걸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라는 자각과 함께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라는 오기가 충돌 하면서 맘고생이 심했습니다. 때문에 한 출판사로부터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땐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습니다. ‘드디어 내가 인정받는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죠.
무식하면 용감하다지 않습니까? 덕분에 처음 1년 반에 걸쳐 <불편한 삼국지>를 쓸 때는 많은 양의 글을 쓰면서도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수정하고 추가로 에피소드를 더해가는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수많은 출판사들로부터 거절을 당하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한 편집자님의 조언을 듣고 난 뒤, 책쓰기와 관련된 책, 블로그, 영상 등을 닥치는 대로 찾아봤습니다. 그러면서 글쓰기와 책쓰기는 다르다는 걸 알았고, 책을 쓰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죠. 결국 처음 가는 길을 혼자 가는 것도 멋지지만, 먼저 가 본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조언을 미리 들어보고 같이 가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라는 걸 몸으로 배운 셈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독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그걸 듣고자 하는 이가 없다면 그 이야기는 이야기로서의 의미가 없습니다. 상대방의 니즈를 모른 채 내 생각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건 직장생활에서 보고서를 쓸 때도 똑같습니다. 보고를 받는 사람이 원하는 걸 써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거든요. 물론 저도 이런 실수를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보고서나 공문은 내가 보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엄연히 독자가 존재하는 글이니까요. 그 독자는 상사일 수도 있고 다른 부서 직원일 수도 있습니다. 그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써야 합니다. 보고서를 쓰는 사람은 이미 그 분야에 정통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 덕분에 본론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결국 전후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상사의 지시를 받아쓰는 보고서라면 지시한 사람의 의도까지 파악해야 합니다. 뭘 원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 부분에 대해 보고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면 독자들은 당연히 불만이 생기겠죠?
글을 쓰면서 머릿속의 이야기들이 정리되는 경험을 합니다. 뭔가 알고 있는 듯 한데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도 글로 쓰다 보면 일목요연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또 말로 할 때는 모른다고 하거나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도 글로 쓸 때는 그럴 수 없습니다. 알 때까지 찾아보고 연구하다 보니 자신의 지적 수준이 올라갑니다. 게다가 저처럼 기억력이 약한 경우에는 글쓰기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사실 저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책은 세 번을 넘게 봤는데도 새롭습니다. 때문에 기록하지 않으면 항상 처음입니다. 하지만 기록해 두고 가끔 그것들을 꺼내보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게 참 재밌습니다. 그게 글의 매력, 글이 가진 힘이 아닐까요?
솔직히 요즘은 더 좋아하는 일이 생겨서 독서에 소홀합니다.(웃음) 하지만 책을 쓰기 전엔 휴가를 내서 도서관에 갈 만큼 책을 좋아했습니다. 노후에는 볕 좋은 마당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보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죠. 그때 그렇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은 덕분에 책도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은 없습니다. 출판사로부터 공기업에 국한하지 말고 <삼국지>와 직장생활에 대한 책을 써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출판하고 난 뒤에야 알게 된 게 있거든요. ‘책의 내용보다 출판 자체에 욕심을 부렸구나’라는 후회죠. 때문에 지금은 더 많은 독서와 그를 통한 생각의 확장이 먼저라는 걸 직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분명히 다시 도전할 겁니다. 제 이름이 새겨진 책을 받아 본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