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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다 귀한 태양전지를 놓고
펼치는 한판 대결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글_조행만 과학 칼럼니스트

영화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출처: 네이버영화)

007에 담긴 시대상

1974년에 개봉된 007 영화 시리즈 제9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는 다른 007 영화와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007시리즈의 이전과 이후를 보더라도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당의 목표는 대부분 금괴, 다이아몬드, 핵무기 또는 잠수함 설계도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악당 ‘스카라망가’의 목표는 태양전지 ‘솔렉스(Solex)’였다. 007의 영원한 주인공 ‘제임스 본드’와 스카라망가는 태양전지를 놓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며 볼거리를 선사한다. 악당 스카라망가는 솔렉스를 뒤쫓는 본드를 제거하기 위해 공포의 킬러들과 함께 그를 공격한다.

이들은 본드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본드는 자신이 가진 뛰어난 능력과 MI6 동료 ‘Q’가 마련해준 첨단 무기들로 아슬아슬하게 킬러들을 물리친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며 본드는 솔렉스를 되찾기 위해 악당 스카라망가에게로 점점 다가간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태양전지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1962년에 처음 제작된 007 영화는 글로벌 영화답게 당대의 국제 이슈를 담고 있다. 60년대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한창일 때에는 두 나라가 전략적으로 우주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당연히 007 영화의 메인 이슈는 우주과학기술이었다.

80년대에는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간의 긴장이 완화되고 지구촌에 전쟁 위험이 사라지자, 악당의 목표는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기 위한 잠수함, 우주선 등의 전략 무기로 바뀐다.

그런데 70년대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이 시대의 최대 이슈는 냉전보다 석유 파동(Oil shock)이었다. 석유 수출국 기구(OPEC)의 원유 가격 인상과 원유 생산 제한으로 인해 전 세계각국에 경제 혼란이 일어났다.

특히 1973년에 발발한 이스라엘과 아랍의 중동 분쟁은 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을 촉발시켰다.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의 대폭 감축으로 석유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국제 석유 가격이 급상승하고 그 결과, 세계 경제에 대위기가 몰아닥친 것이다.

이에 각국 정부는 이 오일 쇼크를 돌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산유국이 아닌 나라들은 대체에너지 개발에 나섰다. 태양전지 개발도 그중의 하나다.

태양전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사실 태양전지의 원리가 발견된 것은 매우 오래전이다.

1839년 프랑스에서 태양전지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광전효과(Photovoltaic effect)가 프랑스의 물리학자 ‘베케렐(E.Becquerel)’에 의해 발견됐다.

이후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돼 1950년대 초에는 초고순도 단결정 실리콘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 또 1954년에 미국의 벨 연구소가 효율 4%의 실리콘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1958년에는 미국의 벤가드(Vanguard) 위성이 최초로 태양전지를 탑재했다. 이때만 해도 태양전지는 우주개발과 같은 국가 전략적 부문에서만 다뤄졌다.

그러나 1970년대의 오일 쇼크는 대체에너지로서 태양전지의 연구개발 및 상업화에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가져왔다. 태양전지의 상업화가 급진전을 이룬 가운데 태양전지 개발 기술은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훨씬 능가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이쯤 되면 007 영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본드와 악당 스카라망가가 왜 태양전지를 놓고 목숨 건 대결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종반에 솔렉스를 손에 넣은 스카라망가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자신의 아지트로 돌아간다.

그런데 차 트렁크에는 본드의 여성 동료 ‘굿나잇’이 타고 있었다. 본드는 굿나잇을 구하고, 솔렉스를 되찾기 위해 스카라망가의 소굴인 악마의 섬으로 찾아간다. 본드를 만난 스카라망가는 자신의 첨단 태양발전소를 소개하며, 전 세계의 태양에너지를 독점하기 위한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는다. 솔렉스는 태양에너지를 모으는 핵심적인 장치로 그의 야망에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007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본드는 악당 스카라망가와 최후의 대결을 벌여 승리하며 다시 한 번 세계를 구한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는 007시리즈에서 크게 성공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본드와 악당이 대체에너지인 태양전지라는 소재를 놓고 대결을 벌였다는 점에서 특색 있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영화의 향수 속에서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