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테마 에세이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며


모든 것은 처음이 있다. 오늘 하루는 간밤에 시계가 정확히 0시를 가리키는 자정에 시작했고, 내 생은 내가 태어난 날 처음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생성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모든 것에는 처음이 있다. 모든 처음은 시간의 화살 위에 놓인다. 그렇다면, 시간의 화살 그 자체도 처음을 가질 수 있을까?

글_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앞으로만 나아가는 화살, 시간

과거를 보나 미래를 보나 시간은 양쪽이 모두 무한대로 멀리 뻗은 직선 같아 보이고, 공간도 마찬가지로 모든 방향으로 거리가 무한대인 무한히 큰 빈 그릇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과학의 역사에서도 시간과 공간은 시작과 출발을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로 여겨졌다.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 칸트의 시공간개념이 바로 그렇다. 칸트는 내용이 아니라 순수한 형식으로서의 공간과 시간을 생각했다. 시공간이라는 형식 안에서 우리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직관해 표현할 수 있을 뿐이어서, 사건은 칸트의 시공간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사건으로부터 독립적인 근대의 시공간개념에 극적인 변화를 만든 이가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맞물려 있어, 공간 안에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는 제각각 시간을 다르게 본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특수상대성이론이다. 일반 상대론은 질량이 있는 물체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시공간은 사건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사건이 시공간에, 그리고 시공간이 다시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우주가 탄생한 빅뱅의 순간에 시공간이 생성되었다는 것도 일반 상대론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공간과 함께 빅뱅의 순간에 태어났다. 시간에도 처음이 있다. 시간은 양쪽으로 뻗어 나가는 무한 직선이 아니다. 명확한 처음을 가져 미래로만 나아가는 화살이다.

시간에도 처음이 있을까?

시간의 처음 이전은 도대체 무엇일까? 흥미롭지만 많은 물리학자는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오늘부터 출발해 시간을 하루하루 과거로 되돌리는 것을, 지금 있는 곳에서 출발해 정남 쪽 방향으로 한걸음 씩 계속 걸어가는 것으로 비유해보자. 계속 남쪽으로 걷다 보면, 우리는 결국 남극점에 닿는다. 그곳이 바로 시간의 처음에 해당한다.

시간의 처음 이전의 시간을 묻는 것은 남극점에 서서 더 남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걸어야 하는지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극보다 더 남쪽은 없다. 어느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도 우리는 항상 남극에서 멀어져 북쪽으로 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시간의 처음도 과거를 갖지 않는다. 빅뱅의 순간에 공간과 함께 태어난 시간은 처음 이전의 과거가 없다.

우주 전체가 아닌 좁은 지구 위에서라면 굳이 빅뱅으로 시간의 처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시간도 당연히 인간의 기준으로 센다. 새해 첫날 1월 1일도 자연이 아닌 인간이 정한 거다.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가 자신의 집정관 취임을 두 달 앞당기고자 당시의 11월을 1월로 이름을 바꿔 새해의 시작으로 한 것이 지금 1월이 1월인 이유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달력의 3월은 시저가 두 달을 앞당기기 전에는 1월로 불렸다는 얘기다. 한 해의 첫 달로는 사실 이때가 더 자연스럽다.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이 바로 3월에 들어 있는 춘분날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의 처음은 인간의 약속이다.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은 흐르지만, 아무도 시간의 흐름을 직접 보지 못한다.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것을 보든, 아침밥이 소화되어 점심때를 알려주는 배꼽시계로 느끼든, 모두 마찬가지다. 흐르는 시간에 표시된 우리의 경험과 사건이 전과 후를 가를 뿐이다. 우리 각자는 삶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시간을 센다. 필자에게 1986년은 대학에 입학한 해고, 1998년은 첫째가 태어난 해, 그리고 2005년은 지금 일하는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해다.

우리 삶의 많은 처음은 밋밋한 시간의 화살에 놓인 의미 있는 사건의 색색의 여러 표지석이다. 새로 놓인 표지석으로 시작해 내일의 삶이 다시 새롭게 이어진다. 시작은 반복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떠 맞는 하루가 어제의 지겨운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사건에 내가 부여할 의미의 무게 때문이다. 빅뱅에서 시작해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화살 위, 새로운 시작으로 놓일 새로운 예쁜 표지석을 상상한다. 그 곳에 적힐 내용은 오늘 내가 만들어낼 내 삶의 의미에 달렸다. 이제 또다시, 새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