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소일 (「제로 웨이스트는 처음인데요」
저자, 환경단체 활동가)
처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인생을 바꾼 날들’이 있다. 그 첫 번째 날은 2011년 3월 11일이다.
그때 나는 일본에서 살고 있었다. 동일본에 엄청나게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본 날이었다.
당시 지진의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지진 규모 9.0의 심각한 자연재해를 경험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열심히 일군 도시, 우리의 집, 마을이 한순간에 휩쓸려 버릴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일을 겪으면서도, 사실 마음의 한 편에 이런 마음이 있었다. ‘원래 일본이니까 그래, 일본은 지진이 많은 불의 고리에 속한 나라니까. 우리나라는 지진도 없고 안전하지!’ 그리고 당연하게 우리나라는 지진이 없는 ‘안전한 나라’라고 방심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일이 아닌, 남의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지진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 버렸다. 2016년 9월 12일,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경주 지진으로 우리 집에 있던 화장대 거울이 살짝 울렁거리고 흔들리는 걸 보았다. 그걸 딱 느끼는 순간 정말 머릿속에 지진 해일처럼 2011년 3월 11일 당시에 발생했던 여러 사건들, 일본 사회의 분위기 등이 확 밀려 들어왔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또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며, 피난 가방을 싸던 일본인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때 피난 가방을 싸던 친구처럼 나도 이제 피난 가방 싸야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면서 방을 돌아봤는데…. ‘책장을 가득 채우는 책, 찬장에 잔뜩 쌓여 있는 그릇들이 지진이 발생하면 와르르 쏟아지겠구나! 지금 피난 가방을 쌀 때가 아니라, 불필요한 잡동사니부터 정리를 좀 해야겠구나!’
일본에서 지진을 경험하고서도 딱히 변화가 없던 나의 일상, 나의 습관이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와버렸다. 그래서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바로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했다. 보다 가볍고, 쓰레기를 덜 만드는 삶을 향한 기록이 시작되었다. 그날을 계기로 환경실천을 기록하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네이버 블로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파워블로거가 되겠다, 책을 출판하겠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네이버 블로그의 목표치는, 천 가지를 덜어내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 천 가지쯤을 덜어내고 나면, 내 삶의 알맹이만 남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로그를 개설하고 첫 번째 글에 999번이라고 하는 번호를 붙였다. 한 가지 한 가지씩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낼 때마다 번호 하나씩 줄이면서 알맹이에 가까이 가고 있다. 단순한 삶을 추구한 지 7년 차, 아직 천 개를 다 채우지는 못했고 이제 한 960가지를 덜어냈다.
천 가지를 덜어내기로 마음먹고 잡동사니를 정리하다가 신기한 걸 알아냈다. 분명히 한 곳을 정리하면, 그곳이 아주 깨끗해진다. 그런데 청소한 데‘만’ 깨끗해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그곳에 있던 물건들이 그저 다른 곳으로 위치를 바꿔 이동한다. 정리하면 그곳만 깨끗해지고 물건들이 자리를 옮길 뿐이었다.
아! 우리 집을 심플하고 단순하고 미니멀하게 하려면, 집 바깥으로 이 물건들을 내보내야 하는 거구나! 집 바깥으로 쓰레기는 버리면 되나? 그러면 집 밖으로 버린 쓰레기는 어떻게 되지? 우리 집과 방을 정리할 때 우리 집에 있던 쓰레기나 물건들이 빙빙빙 우리 집을 돌고 있는 것처럼, 내가 집 바깥으로 내보낸 이 물건들이 이 지구 안에서 빙빙빙 도는 거 아닐까? 그동안 버린 쓰레기는 어떻게 됐지? 그렇게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졌다.
이제는 심플하게, 단순하게, 최소한으로 소유하는 삶,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미니멀리스트를 한글로 풀어 쓴 것이 ‘최소주의자’이다. 그런데 그냥 내 삶만 단순하게 만드는 ‘그냥’ 최소주의자가 아니라, 지구에 남기는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줄인 ‘윤리적’ 최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많은 잡동사니를 정리했다. 약 4,850개의 물건을 정리하고 비웠다. 그렇게 비우고 또 비우니, 이제 내 방에는 책상 하나, 3단 책장 하나, 의자 하나가 남았다. 이제 제법 ‘최소주의자(미니멀리스트)’의 집이 완성되고 있다.
정리를 시작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정리’ 시간을 정해두고 5분만 정리해보자. 버릴 것, 고칠 것,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것 등 잡동사니를 분류해두고 당장 버릴 것들 조금씩 버려보자.
혼자서, 친구와 함께 ‘미니멀리즘 게임’을 해보자. 30일이면 465개의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 첫날에는 한 개, 둘째 날에 두 개, 30일째에는 30개를 비우면 된다.
정리한 물건들을 버리기 전에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두면, 정리하기가 더 쉬워진다. 사진이나 그림으로 남겨두면 비우기가 훨씬 수월하다.
정리하면서 늘 ‘이 물건 언젠가 쓸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언젠가 살 빠지면 입으려고 사둔 원피스 등…. 이제는 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