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ERGY

한 줄 마음산책

선배여!
눈 덮인 길을 걷듯이 가라


글_박홍규(前 한전KPS 원자력연수원장)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은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따르는 이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 서산대사의 답설(踏雪)

한 장 남은 12월의 달력이 겨울을 부른다. 시간이 흐르면 지위가 오르고 연륜이 쌓인다. 홀로 앞만 보고 달려 나간 줄 알았지만 거느리는 후배들도 많아지고 생각도 깊어진다. 고참 선배가 되어 갈수록 책임은 무거워지고 후배들 다루기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어느덧 지나온 순간순간이 엮여 삶의 궤적이 이루어지고 ‘나’라는 존재가 후배들에게 각인된다. 직장 내에서 선배의 행적은 후배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거나 귀감이 되기도 한다. 누구는 ‘꼰대’, ‘개저씨’로 분류되고 어떤 사람은 인생을 앞서간 어른이자 멘토로서 남게 된다.

눈이 내린 날, 나의 발자국은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듯이 직장에서 선배들이 성장하는 과정은 후배들에게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눈 덮인 길을 갈 때는 어지럽게 걷지 말라는 말이다. 선배의 비틀거린 흔적은 뒤따르는 후배들의 걸음도 비틀거리게 만든다.

곧은 길을 가는 선배의 뒷모습은 직장생활의 나침반이자 후배를 이끄는 힘이 있다.

꼰대와 멘토로서 선배는
종이 한 장 차이

선배의 사람됨의 깊이는 후배들에 대한 태도로 가름해 볼 수 있다. 재직 시에는 모든 업무를 통달한 듯이 무용담을 펼치며 충고하고 가르치려 하고, 퇴직 후에는 아직도 현직에 있는 듯 착각해서 섣불리 후배들을 대한다.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면서 내가 우월하다고 느끼는 갑질 심리가 그들을 지배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자기 방식대로 지시 명령하는 사람은 꼰대가 분명하다. 재직 당시의 직위가 영구불변의 것으로 착각해 모임에 나가서는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듯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모임에서는 당연히 좌장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을 아랫사람 다루듯이 훈계한다. 이런 유형의 선배들을 선배라 부르고 꼰대라고 기억하는 후배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런 꼰대에게는 시간이 흐르면 고독만이 그들을 지켜주는 벗이 될 것이다.

멘토같은 선배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한다. 과거에 멈춰있지 않고 늘 공부하며,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세상의 변화는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폭이 광범위하다.

과거의 20대와 지금의 20대는 확연히 다르다. 때문에 ‘나 때는 말이야’가 더욱 통하질 않는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사가 빠르고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강요할 수 없다. 후배의 의견을 듣고 공감하며 격려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해 줄 수 있다면 멘토로서 손색이 없다. 마음속의 집착을 내려놓고 후배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선배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결국은 꼰대와 인생의 멘토같은 선배를 구분짓는 요인은 존중, 배려, 경청, 내려놓음이다. 이것을 제대로 실천할 줄 아는 선배라면 꼰대가 아닌 인생의 멘토이자 어른으로 기억될 것이다.

멘토 같은 선배로 거듭나기

연륜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야 마는 선배를 후배는 어떻게 기억할까? 눈 위의 발자국이 바른길을 벗어나 편법이 목적을 이루었을 때, 후배들은 그 길이 바른길로 오인하여 편법이 판을 치는 길을 따를 것이다. 곧은 길을 내는 선배가 되어야 후배들은 방황하지 않고 곧은 길을 따라간다.

회사 밖에서는 직급을 떠나 동등한 자연인으로 후배들의 소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하여 보자. 후배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공감해 줄 수 있다면 소통은 이루어질 것이고 꼰대 밖의 선배로 인정받을 것이다. 선배가 지닌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새로운 지식을 뛰어넘기 어렵다. 그래서 항상 신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김형석(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연초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공부하라고 권했다.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옵니다.” 선배다운 선배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쯤에서 꼰대 소리 듣기 싫다면 알려줄 만고의 진리 하나.

“오직 입 다물고 지갑을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