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테마 에세이

조직의 성공은
위에서 오지 않는다


글_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

뛰어난 사람과 본받고 싶은 사람

살다 보면 놀라운 사람을 만날 때가 가끔 있다. 능력이 정말 뛰어나 어떤 일도 척척 해내는 사람을 보면 무척 부럽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잘 어울릴 수 있는 붙임성 좋은 사람을 봐도 부럽다.

하지만 부럽다고 내가 꼭 그분을 본받고 싶은 것은 또 아니다.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는 많은 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들 본받고 싶은 사람이 더 낫다. 뛰어난 사람보다는, 잠깐 이야기만 나누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난 참 좋다.

더 좋은 리더십은 앞에서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힘 있게 끌어주는 역할이 아니라, 앞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일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내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리더보다는, 믿음이 가는 뒷모습으로 뒤따른 이들이 앞으로 걸어갈 방향을 묵묵히 보여주는 본받고 싶은 리더가 더 낫다.

계층구조와 리더십

이전에 리더십에 대한 연구로도 읽힐 수 있는 논문을 물리학 학술지에 출판한 적이 있다. 연구 동기는 무척 단순했다. 당시 출판된 한 논문에서 완벽한 계층구조를 따라 위 계층에서 아래 계층을 향해 한쪽으로만 정보가 흐르는 구조가 가진 장점을 밝혔다. 이런 한 방향 계층구조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짧은 시간 안에 하나의 일치된 의견으로 합의하게 된다는 결과가 실린 논문이었다.

논문에서 다룬 계층구조를 보면서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매번 방학이 코앞에 닥치면 담임선생님이 ‘비상연락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알려줬다. 선생님이 반 친구 모두에게 전달할 급한 소식이 있을 때, 누가 누구누구에게 연락하라는 정보 전달의 연결망을 구성한 것이 비상연락망이다.

담임선생님이 처음의 한 친구에게 소식을 전하면 이제 비상연락망 작동이 시작된다. 이 친구는 자기가 연락하는 것으로 이미 비상연락망에 배정되어 있던 두 친구에게 소식을 알리고, 이렇게 소식을 들은 두 친구는 또, 각자 자기가 연락해야 하는 두 학생에게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다. 단계가 늘어나면 소식을 들은 학생의 전체 숫자는 ‘1, 1+2, 1+2+4, 1+2+4+8’의 방식으로 빠르게 늘어난다.

간단히 그 결과를 수학의 등비급수로 계산해 볼 수 있다. M번의 단계를 거친 후 소식을 전달받은 학생의 전체 숫자는 2M-1명이 된다. 각자가 딱 2명에게만 소식을 전해도,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도 딱 20단계면 모두 다 소식을 듣게 된다. 위의 계층에서 아래의 계층으로만 정보가 전달되는 완벽한 계층구조가 가진 놀라운 효율성이다.

당시 계층구조의 효율성을 다룬 논문을 읽고는 의심이 들었다. 계층구조의 최상층에 있는 사람이 가진 소식이 의미 있고 중요한 정보라면 모를까, 만약 잘못된 정보라면 어떨까? 계층구조는 그 속성상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자신의 의견을 바로잡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다. 앞의 비상연락망의 예에서도 선생님이 알린 소식을 첫 번째 친구가 엉뚱하게 오해해 다른 친구에게 전달하면, 한 반 전체 학생 모두에게 빠른 속도로 엉뚱한 소식이 전달된다.

만약 집단 안에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두 의견 중 더 나은 의견으로 모두가 합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꼭 피해야 하는 구조가 바로 상명하복 계층구조다. 바로 이 문제에 착안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계층구조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의 채널을 연결망에 추가하면서, 의사소통 채널이 점점 늘어날 때 전체 조직이 두 의견 중 더 나은 의견으로 과연 합의할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조직의 최상층이 가진 엉뚱한 의견을 사람들이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최상층에 있는 바로 그 1인은 아무리 의사소통 채널이 늘어나도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도록 했다.

간단한 모형을 통한 연구였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 채널이 충분히 늘어나면, 사람들 다수가 최상층의 의견과 다른 더 나은 의견으로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직의 리더가 엉뚱한 생각을 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서 조직 전체가 더 나은 의견에 합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결과는 더 있었다. 이렇게 활발한 의사소통을 하는 조직은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무척 오래 걸린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연구를 통해 발견한 리더의 조건

연구를 진행하면서, 조직의 리더로서 어떤 사람이 더 나을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먼저,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리더가 좋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의견을 이리저리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바꾸는 리더가 더 바람직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정할 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여럿의 의견을 참고해서 합리적으로 결정한 본인의 의견은 소신껏 다른 이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전달하는 믿음직한 리더가 바람직하다. 더 나은 의견을 들으면 자신의 고집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경청하는 리더십, 다른 사람들 사이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허락하는 리더십이 조직을 성공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