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가수 노사연 님이 부른 노래 <만남>의 가사다. 우연한 어떤 만남은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봤을 때 운명처럼 보이곤 한다. 돼지꿈 꾸었다고 로또에 당첨되는 것은 아니지만,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돌이켜보면 특별한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연적 만남이 우리 마음속에서 운명적 만남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시간의 마법이다.
모든 만남의 시작은 우연이지만, 만남 이후 우리가 부여한 의미는 우연을 인연으로 바꾼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이켜본 과거의 우연 중 멋지고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인 일부가 인연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인연은 이처럼 우연으로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우연이 인연이 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인연은 지금 이곳에서 되돌아 다시 발견한 우연이다.
그렇다면 ‘연결’의 의미로 보면 어떨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있다.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된 사회 연결망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연결망의 점 하나하나는 세상의 모든 존재고, 둘 사이를 잇는 선은 둘의 관계를 의미한다. 둘씩 짝을 지어 선으로 이어진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연결망을 넓은 평면에 펼치자. 그리고는 나를 뜻하는 한 점을 골라 손가락으로 콕 집어 위로 살짝 들어 올려보자. 넓게 펼쳐진 그물에서 그물코 하나를 집어 위로 올리듯이 말이다. 그물 한 칸 높이만큼 올리면 내 바로 아래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위로 딸려 올라온다. 높이를 한 칸 더 올리면, 이제 그 아래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
한 칸 한 칸 나를 위로 올리면 무슨 일이 생길까? N번 위로 올리면, 결국 나와 N단계로 연결된 사람들이 모두 올라온다. 결국 세상 모두가 한 덩어리를 이뤄 위로 번쩍 오른다. 세상 모든 이가 그물코를 이루는 이 그물은 정말 넓다. 얼마나 높이 올려야 넓은 그물 전체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평균 6번, 즉 6단계를 거치면 미국의 3억 사회 연결망을 통해 모두 연결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6을 6번 곱하면 3억 정도가 되니, 한 사람을 상상의 그물망에서 집어 위로 한 칸 올릴 때마다, 평균 26명의 사람이 더 연결되는 셈이다. 그물코를 처음 한 번 들어 올리면 평균 26명이 딸려 올라오고, 한 번 더 들어 올리면 26명 각자에게 연결된 26명씩, 모두 676(26×26)명이 그물이 놓인 평면을 벗어나 위로 올라온다. 이렇게 모두 여섯 번만 들어 올리면 3억 정도가 된다. 그리고 3억에 26을 한 번 더 곱하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인 78억이다. 미국사람 모두가 6단계에 연결되면, 미국 밖 전 세계 인구는 평균 7단계면 연결된다. 세상은 정말 넓지만, 좁기도 하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다른 모두와 놀라울 정도로 서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모두가 7단계면 서로 연결된다고 해서, 모든 연결이 만남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옷깃을 스치는 사람의 숫자는 78억 인구 중 일부이고, 또 이렇게 적은 수의 만남 중 극히 일부가 돌이켜 본 과거의 인연이 된다. 우연에서 인연이 된 만남 중 어느 하나라도 연결을 멈추는 순간, 나는 그와의 연결로 이어진 수많은 인연을 함께 잃는 셈이다. 모든 인연은 어쩌면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세상을 연결하는 그물망에는 꼭 인간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 강아지 ‘콩이’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나는 하나의 자아로 세상 그물의 한 그물코로 나를 인식하지만, 내 몸 하나도 사실 얽히고설킨 수많은 그물코로 이루어져있다. 내 몸을 이루는 수많은 세포, 그리고 어떨 때는 서로 돕고 어떨 때는 서로 나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세균도 내 몸을 이루는 그물의 그물코다. 내 몸이라는 그물망은 꼭 생명만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숨 쉬는 공기, 내가 먹는 음식들, 이 모두가 나라는 그물망과 연결된 내 밖 그물망의 그물코다.
세상을 연결하는 그물망을 확대해 나가면, 결국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모든 존재가 우주 안의 다른 모든 존재와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깨달음이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으로 규모를 좁혀 봐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은 지구 위 모든 이의 삶에 의존하고, 우리 인간 모두의 삶은 지구 위 모든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그물코 하나인 나는, 결국 나를 제외한 모든 그물코가 없다면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내가 관계의 총합이라면, 우주에서 나를 뺀 모든 것도 결국은 나다. 지금까지의 모든 만남이 바로 지금의 나고, 앞으로 이어질 내 삶의 모든 만남이 미래의 나다. 모두 마찬가지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