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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나무가 들려주는 경영이야기 13

나무들의 묵시록 (默示錄)


글_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박홍규 교수
(前 한전KPS 원자력연수원장)

# 풍경1 : 다시 돌아온 빈 겨울

나무들이 버거운 잎들을 내던질 때면 어김없이 계절은 겨울로 들어선다. 비바람에 맞서며 그늘진 풍성한 숲을 내어준 나무는 겨울을 대비하여 잎을 떨구어 몸을 가볍게 한다. ‘비움’을 통해 다음 해의 ‘채움’을 준비한다. 나무는 피고 지는 때를 알고 있다. 피는 시기를 잘못 짚은 나무는 오래가지 못함을 보았다. 그렇게 계절에 순응하며 차근차근 성장을 거듭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가지려고만 하며 비움에 인색하다. 오히려 겨울을 준비하며 많은 것을 저장하고 두터운 옷으로 무장한다. 그래도 자연에 순응하는 나무는 기대수명 84년의 인간보다는 더 오래 산다.

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며 철든 티를 내는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찾아온 지위와 권한을 오래 유지하고 싶어 한다. 욕심이 끝없는 철부지들이 많은 철들지 못한 세상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대는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權不十年)이라는 말도 모르는가.” 붉은 꽃은 10일을 못 피고 권력은 10년을 누릴 수 없다는 말은, 지속되는 권력은 없으니 누리지만 말고 베풂을 실천하라는 훈계이기도 하다. 지위가 오를수록 아래를 살펴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고 덜어주는 해결사로서 쉼의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조직은 건강하게 성장한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며 벌거숭이 나무는 말한다. “먼저 비우세요.”

# 풍경2 : 나무의 무늬는 어디 껍질뿐이랴

가뭄이 든 논바닥처럼 거친 껍질을 지닌 소나무나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백일홍은 모두 나이테를 지닌다. 크고 작은 나무의 나이테 속에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성장기록이 담겨있다. 그해의 강수량, 햇빛, 바람, 기온 등 과거의 흔적이 나이테에 남게 된다. 풍성한 비와 햇빛 속에 자란 해에는 나이테가 넓고 가뭄과 햇빛을 덜 받은 해에는 폭이 좁다. 한 해에 자란 나이테도 북쪽이 좁고 남쪽의 나이테가 넓은 것과 같다. 나이테가 수북이 쌓인 오래된 나무일수록 넓고 짙은 그늘을 통해 베풂을 선사한다. 베풀며 성장하는 나무처럼 지위가 오를수록 베풂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계절로 접어들면 인사철과 겹쳐서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따뜻한 격려와 위로, 용기와 힘을 내도록 베푸는 아량이 필요한 시기이다.

사람들 또한 지나온 자신의 흔적을 보면 자신만이 그리는 무늬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품격이다. 직장생활 속의 고민과 기쁨과 역경, 그것들을 헤쳐 온 지혜로움, 나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생활태도는 고스란히 삶의 무늬로 투영된다. 나무가 뿌리내린 곳의 환경과 극복의 흔적을 나이테에 무늬를 그려 놓듯이 자신의 성장과정은 자기만의 나이테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며 드러나는 나이테의 속살은 은연중 인품으로 드러난다. 품위 있게 나이 든다는 것은 밖으로 드러난 인간 나이테의 흔적이 아름답다는 말일 게다.

나무는 말한다. “나이는 위로 먹는 게 아니라 옆으로 먹는 겁니다.”

# 풍경3 : 나무는 때를 기다릴 줄 안다

인사철과 겹쳐 기쁨을 누리는 사람보다는 아쉬움에 낙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자연이 위로하는 메시지는 먼저 핀 꽃은 홀로 일찍 시든다(開先者 謝獨早)는 것. 노력한 사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도 결국 정년이 다가올 즈음에는 같아진다. 활짝 핀 백일홍의 화사함도 사계절을 누릴 수 없었다. 황금빛으로 정원을 압도하던 황금회화나무도 지금은 똑같이 벌거숭이로 겨울을 지낸다. 아쉬움과 탄식은 뒤로하고 각자의 피는 시기가 다름을 인정하자. 이제는 준비의 시간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만 시간의 법칙’을 아는가.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6시간씩 투자할 경우 5년이 걸린다. 자신의 계절을 맞이하기까지 나무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 왔다. 사람들도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자신의 계절을 맞이하여 독특한 매력과 화사함이 드러날 것이다. 안에서의 경쟁보다는 밖에서의 경쟁에서 이겨낼 힘을 키우는 것이 자기경쟁력의 원천이다. 조급해 하지 말고 멀리 보고 준비하자.

화려한 마당풍경을 선사했던 꽃나무들은 말한다. “저는 꽃을 피우기 위해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뎠답니다.”

# 풍경4 : 나무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나무는 시기에 맞춰 거름을 주고 가다듬을수록 아름답고 웅장한 가지와 풍성한 열매를 선사한다. 조직의 발전도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회사의 힘은 현장에서 비롯되며 조직의 성과는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단합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주 대화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것을 소통이라 한다.

소통이 원활한 조직은 직장 갑질이 발들일 틈이 없다. 일방적인 지시, 직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결핍된 상태에서는 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지위만을 내세우는 윗사람 밑에서는 적극성보다는 소극성이, 엉뚱하리만큼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보다는 지시대로만 처리하려는 순종만이 살길임을 직원들은 안다. 결국 조직은 동맥경화에 병들게 되며 조직성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지만 주인의 손길이 많이 간 나무는 곧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숲의 일원이 되어 인간 세상을 지킨다. 좋은 결실을 기대한다면 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나무는 그것을 지적한다. “많은 결실을 원하세요? 그럼 저에게 많은 관심과 손길을 주세요.”

나는 식물학자가 아니며 나무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뭇 생명을 데려와 키우려면 각자의 특성을 알아야 하겠기에 자료를 찾아 적용해 본 경험을 기록해 보았다. 지금까지 나무와 관련된 소회와 더불어 설중매, 상록수, 자귀나무, 황금회화나무, 무궁화, 배롱나무, 칠자화를 소개하였다. 아직 남아 있는 나무들이 자기소개를 기다리고 있으나 이마저도 때를 기다리자고 위로하며 글 창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