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테마 에세이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주는 것,

감사


연말 방송가 연기대상 같이 큰 상을 수상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볼 때가 있다. 수상이 발표되면 기쁨에 찬 수상자는 곧이어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연예인뿐이겠는가. 살다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다. 두근두근 기다리던 기쁜 소식을 들으면 도움을 준 많은 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주변 모두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는 한다. 크고 중요한 일에만 우리가 감사를 느끼는 것도 아니다. 작고 사소한 것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글_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

감사의 사슬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그리 비싼 돈을 치르지 않고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턱하니 내 앞에 놓이게 된 기적에 전율한 적이 있다.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떠올렸다. 가꾸고 거두고 모으고 나르고 만든, 많은 사람이 있기에 내 앞에 짜장면이 놓일 수 있었다. 세상 속 관계의 사슬은 서로 팔짱을 낀 많은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나에게 이어진 사슬의 종착점이지만 동시에 내 뒤로도 길게 이어지는 사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내가 지불한 짜장면 값이 모이고 쌓여 주방장의 월급이 되었다가 아이의 공책이 된다. 누군가의 이익이 다른 이의 손해가 되는 방식이 아니다. 세상 속 관계의 사슬에서 모두가승자다. 내가 치른 값보다 내가 먹은 짜장면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 한 그릇 짜장면을 앞에 놓고 감사의 마음이 들 수밖에.

여러 고리로 이어진 쇠사슬 양쪽을 잡고 팔을 벌려 옆으로 길게 늘어뜨려 보자. 중간에 놓인 고리는 혼자서는 그곳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연결된 양 옆의 두 고리가 그 고리를 지탱하고, 이 두 고리는 또 다른 여러 고리가 몸을 엮어 지탱하고 있다. 세상 속 관계의 사슬에서, 나에게 연결된 많은 고리가 서로 몸을 엮어 나의 자리를 가능케 하고, 나는 또 내 자리에서 내 몫을 감당해 다른 고리들이 각자의 위치에 있는 것을 가능케 한다. 관계의 사슬에 늘어선 모든 고리는 서로 팔짱을 끼고 다른 모두의 버팀목이 되는 셈이다. 오늘 하루 어제 같이 무사했다면, 세상의 사슬을 몸으로 함께 지탱하는 모든 이에게 깊이 감사할 일이다.

감사는 모든 것에 깃들어있다

감사를 느끼는 대상이 항상 세상 사람들인 것은 또 아니다. 상황 자체에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가 있다. 코끝이 시린 어느 겨울날, 눈 들어 바라본 하늘의 쨍한 푸른빛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이 있다. 저 하늘을 그래도 한번 봤으니 내 삶도 이만하면 살만한 것이었겠다 싶었다. 어느 봄날 갑자기 눈에 띈 여린 싹의 사랑스러운 연둣빛, 멀리서부터 몰려오는 장대비가 땅에서 피어 올리는 구수한 흙냄새, 발밑에서 사각사각 속삭이는 낙엽 쌓인 가을 산길. 잠깐만 돌이켜봐도 이런 경험이 지천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이곳에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낀 적이 많다.

과학자로 살다보면 또 다른 감사의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과학적 사실을 명징하게 직관적으로 투명하게 꿰뚫어 이해하게 될 때다. “우리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이해 불가능한 일”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도 떠오른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무딘 도구로 광대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의 일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토록 짧은 인간의 역사에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일정 정도의 이해에 도달한 경이로운 인간의 이성에, 자연의 일부가 나의 이성으로 이해가능하다는 사실 자체에, 깊은 감사의 느낌을 떠올린 경험이다.

천확일금의 감사

우리는 주로 기쁨, 즐거움, 행복감 같은 긍정적인 마음이 들 때 감사의 느낌을 아울러 가진다. 어떨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같은 상황에도 사람들마다 행복감의 정도가 왜 제각각인지, 행복감은 왜 계속 유지되지 못하고 시간이지나면서 줄어드는지, 여러 연구결과가 있다.

먼저, 우리는 행복감을 ‘차이’로 느낀다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마음속에 나름의 기준이 있고, 이 기준선으로부터의 상대적인 거리가 우리의 행복감의 강도를 정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10만 원은 엄청난 행복을 주지만 부자에게 10만 원은 별 행복감을 줄 수 없는 것도, 둘의 기준선이 달라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다르게 측정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지속될수록 기준선이 이동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갑자기 늘어난 월급에 느끼는 행복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몇 달 만 지나도 내 마음속 행복한 월급의 기준선은 더 큰 값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시간에 따라 이동하는 행복의 기준선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행복을 느끼는 상황과 대상의 폭을 크게 넓히는 일이다. 맛있는 음식, 새로 찾은 멋진 음악, 오랜 친구와의 만남, 가족과의 주말 산책 등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정말 다양하다. 부족한 것에 불행해하지 말고 가진 것에 행복해하는 것이 행복의 첩경이다.

감사하다는 감정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이어지는 삶에 더 충실하게 한다. 감사하려면 먼저 행복할 일이다. 행복은 한 번에 큰돈을 얻는 ‘일확천금(一攫千金)’ 이 아니라 오히려 자주 조금씩 다양하게 성취하는 ‘천확일금(千攫一金)’에 가깝다. 이것만 성취하면 내가 행복해질 것이 확실한 그런 것은 세상에 없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방금 스쳐 지나간 귀여운 아이의 미소, 오늘 처음 먹어본 맛있는 컵라면 등 사소하고 작은 것에 자주 행복하시길. 작고 사소한 것들에 늘 깊이 감사하시길.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일 년 동안의 연재를 마친다. 읽어주신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