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테마 에세이

지속 가능한 세상


글_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

기업은 어디에 있는가

요즘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지속 가능성’이 화두다.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해 이익을 거두는 것이 목표인 기업도, 기업이 제공한 것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불확실한 미래에도 지속이 가능하려면 이제 기업은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를 고려한 적절한 의사결정구조(Governance)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요즘 ESG경영이라는 단어가 언론 매체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이유다.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경영은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해서 소비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우리 앞에 놓인 먼 미래에도 기업이 생존하려면, ESG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업은 환경과 사회와 동떨어져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에도 ‘환경’이 자주 등장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정보를 교환한다. 환경으로부터 완벽히 단절된 시스템을 고립계라고 한다. 고립계는 시간이 지나면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최종적인 평형상태를 향해 비가역적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환경에 대해 열려 있는 시스템은 엔트로피 증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새롭고 놀라운 현상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매일 밥 먹고 새롭게 배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 에너지를 공급받아 유용한 일을 하는 엔진, 햇빛과 물의 도움으로 봄에 피는 예쁜 꽃, 모두 마찬가지다. 외부 환경의 도움으로 내부의 상태를 바꿔 나가는 과정을 이어간다. 환경으로부터 고립된 것이 자연에 없듯이, 환경과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기업도 없다. 기업은 고립무원의 섬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으로 이루어진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다. 사람과 자연, 사회와 환경이 없다면 기업도 없다.

공유지의 비극

오랫동안 우리 인간은 사회와 환경으로 이루어진 바다의 크기가 무한대라고 여겼다. 지구의 자연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무한대, 우리가 배출한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자연의 능력도 무한대라고 믿었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내어주고 어떤 잘못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것으로 보였던 자연이 사실 유한한 크기였다는 것을 요즘 우리는 매일 깨닫고 있다. 자연은 엄청난 크기의 대양이 아니라 결국 작은 연못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양떼를 기르는 마을 사람들이 있다. 양떼를 먹일 내 풀밭도 있지만 마을 사람 누구나 자신의 양떼를 풀어 놓을 수 있는 마을 공유의 풀밭이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현명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양떼를 먼저 마을 공유의 풀밭에 풀어놓아 풀을 먹이고, 그곳의 풀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야 자신이 소유한 풀밭에서 양떼를 먹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만 똑똑한 것이 아니다. 결국 마을 공유의 풀밭은 수많은 양으로 북적이고, 그곳의 풀은 순식간에 모두 없어져 황무지가 된다. 있지만 아무도 쓰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러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의 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구의 환경오염이다. 지구를 둘러싼 대기를 마을의 공유풀밭으로, 그리고 자기의 양떼를 공유지에 슬쩍 먼저 풀어놓는 행위를 오염물질의 배출로 바꿔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리 비용 없이 몰래 오염물질을 배출하면 내게는 이익이지만, 모두의 이기적인 이익추구로 결국 지구 대기의 심각한 오염이 일어나게 된다.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근시안으로는 저 멀리 다가오는 장기적인 피해를 막기 어렵다. 모두가 함께 공유한 푸른 풀밭과 맑은 연못을 후손에게 물려주려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꼭 필요하다.

내일을 위한 투자

기업과 소비자는 사회와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다시 기업과 소비자에게 되돌아온다. 그래서 필요한 상품을 가능한 싼 가격에 구매하는 소비자의 합리성도 변하고 있다. 현대의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에 가치를 담는다. 자신의 소비가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더 높은 가격마저도 흔쾌히 지불하는 착한 소비자가 늘고 있다. 노동자 인권을 침해하는 회사,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회사의 상품은 시장에서 빠르게 도태된다.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마저도 기업활동에 반영하는 기업이 더 높은 수익을 거두는 미래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기업과 사회, 기업과 환경은 한 쪽의 손해가 다른 쪽의 이익이 되는, 뺏고 뺏기는 관계가 결코 아니다.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의 공생에 더 가깝다. 사회와 환경을 고려한 기업과 소비자는 사회와 환경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그렇게 바뀐 사회와 환경에서 기업과 소비자도 더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성장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내일의 비교다. 더 나은 내일을 바란다면, 오늘 하루를 버텨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어야 한다. 지속이 없다면 당연히 성장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무한한 크기의 자연과 무한한 소비 규모의 확대를 가정한 전통적인 의미의 경제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환경과 사회의 내일을 위해 오늘의 부담을 감수하지 않는 기업은 내일이 없다. 손해를 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거꾸로다. 환경과 사회를 위한 오늘의 부담은 내일의 지속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현명한 투자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많이 남는 장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