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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나무가 들려주는 경영이야기 10

열정 가득한 초대
배롱나무(Dynamite)


우수사례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지만, 남용될 경우 오히려 조직의 무기력함을 낳기도 한다. 늦여름 열정을 꽃피우는 배롱나무를 통해 조직의 개선과 성과 창출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글_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박홍규 교수
(前 한전KPS 원자력연수원장)

떠난 벗을 그리워하는 여름전령사

여름이면 나무의 성장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봄볕에 꽃 잔치를 벌였던 나무들은 여름철이면 짙은 나뭇잎으로 그늘을 드리운다. 꽃이 드문 여름날의 불볕더위 속에 백색의 무궁화, 노란 꽃의 모감주나무, 주황색의 능소화, 연분홍의 자귀나무, 붉은 배롱나무가환하게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배롱나무, 무궁화, 자귀나무는 여름을 대표하는 꽃나무로 알려져 있다.

배롱나무는 낙엽교목으로 5~6m 정도 성장하며 백일홍나무, 목백일홍, 자미화(紫薇花)로 불리기도 한다. 100일 동안 붉은꽃을 피워 백일홍(百日紅)나무라고 부르지만, 무궁화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꽃이 반복해서 피고 지기를 거듭하여 여름 내내 꽃을 품고 지낸다. 또한 국화과 한해살이 풀인 백일홍과 구별하기 위하여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배롱나무는 추위에 약하지만 여러 종류 중에도 추위에 강하게 육성된 품종이 다이너마이트(Dynamite)이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올해 심은 묘목이 자라 꽃을 틔웠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분홍색의 배롱나무보다는 다이너마이트 품종은 붉은색으로 녹색의 정원에 강렬한 인상을 준다. 색상이 매우 매혹적이다. 돋보이는 색감으로 여름을 오래도록 지키는 나무라서 그런지 꽃말이 ‘떠난 벗을 그리워하다, 부귀’이다. 껍질을 벗는 배롱나무를 보고 스님과 선비는 세속을 버리라는 의미로 사찰과 서원에 심어 청렴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부귀를 가져다준다는 믿음 때문인지 고택의 마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두 번이나 크게 자란 나무를 구해서 심었건만 겨울이 지나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동사한 아픈 추억을 준 나무이기도 하다. 중부지방에서는 월동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른 봄부터 새잎을 돋우는 나무들과는 달리 배롱나무는 늦봄에 이르도록 겨울 동안의 빈 가지를 유지하고 있어 추위를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잎을 돋우는 데 필요한적정온도가 높아서 잎이 늦게 올라오지만 빨리 성장하여 가지를 뻗어내며 새로운 가지 끝에 풍성한 붉은 꽃이 달린다(당해년 가지에 꽃을 피우는 나무로는 배롱나무, 무궁화, 능소화, 장미, 불두화가 있다). 열정 가득한 여름날의 정원풍경이다. 배롱나무는 양지바른 곳과 물을 좋아한다. 수국과 어울려 심으면 좋을 듯하다. 이렇듯 나무는 자기만의 생육조건이 맞아야 건강하게 자란다. 조직에 뿌리내릴 각종 제도와 경영기법들도 조직의 생태와 이질감이 없어야 부작용 없이 자리 잡게 된다.

우수사례(Best Practice)의 함정

유행은 경영에도 관여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경영기법을 보아왔고 일부는 도입해 왔다. 상사들은 조직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경영기법에 현혹되어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급기야는 컨설팅을 받게 되고 결과보고서만이 책장을 지키게 되는 우를 범한다.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한 기업들의 우수사례(Best Practice)는 당장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을 준다.

기억해 보자. 청년중역회의(Junior Board System),전사적 품질 경영(TQM: Total Quality Management), 리스트럭처링(RS: Restructuring), 학습조직(LO: Learning Organization),리엔지니어링(BPR: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전사적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균형성과평가제도(BSC: Balanced Score Card) 등등 몇 가지만 보더라도 계절의 유행처럼 불길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진 많은 경영기법들을 볼 수 있다. 조직, 인사, 업무, 경영계획, 재무, 정보화 등의 기업의모든 분야에 걸쳐 기업들은 앞다퉈 도입했다.

지금은 어떤가. 그동안의 경영혁신 기법들이 제대로 정착되어 조직의 효율성을 높여 왔다면 지금쯤은 초우량기업이 도처에 널려 있어야 한다.

해외의 사례들이 국내에 도입되고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어 기법과 교육과정이 개설되면서 제도도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기업들에게 필수선택의 해결사로 소개된다. 우수사례는 언론을 통해 확산되어 수용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언론과 컨설팅사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남에게 좋은 약이 내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경영기법은 경영의 본질이 아니라 오직 도구일 뿐이다. 나무마다 생육조건이 맞아야 건강한 뿌리를 내리고 짙은 녹색의 풍성함과 숲을 제공해 주듯이 새로운 제도와 기법의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경영기법이라도 오랫동안 자리 잡아 온 조직문화와 구성원들의 인식이 서로 융합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와 경영기법은 조직의 생육조건과 맞아야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깊은 고민과 해결방안을 궁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한 제도의 도입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거듭된 제도의 오남용은 직원들에게 학습된 무기력함을 낳게 된다. 이러한 무기력한 감정은 새로운 제도와 경영기법 도입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이르러 제대로 작동되지 않게 된다. “또 해? 지난번에도 흐지부지된 것처럼 얼마 지나면 사그러들게야. 하면 뭘 해, 실적용 아니야?” 학습된 무기력함이 불러 온 실패사례의 전형적인 징조이다.

기억하자. 새로운 제도와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것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항상 최고의 성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최신 경영기법은 성공의 마술사가 아니다. 직원들이 공감하고 필요성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공의 문은 열린다.

개선된 회사의 미래를 설계하며 현실의 문제점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직원들이 있기에 회사는 성장한다. 자신을 소진시켜가며 열정 가득한 직원들의 버둥거림이 있기에 조직은 발전한다. 열정을 품고 희생적인 노력을 다하는 직원들에게 배롱나무의 열정 가득한 꽃으로 위로를 보낸다.

그들을 탓하며 현실 안주에 익숙한 이들에게 시인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에서 나지막이 속삭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