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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in 에너지

시대를 앞서간 쥘 베른의 상상력,
이제 현실이 된다

영화 <해저 2만 리>


글_조행만 과학 칼럼니스트

영화 <해저 2만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반세기가 넘도록 사랑받는 고전 작품 <해저 2만 리>

푹푹 찌는 폭염에 열대야가 이어지는 여름. 자연스레 바다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러나 지금은 방콕 여행이 딱 어울리는 코로나 시대. 인파가 몰리는 해수욕장에 가는 대신 방에서 지나간 해양 모험 영화들을 감상하는 것은 바다에서 느끼는 환상, 신비로움을 간접 체험하는 대리만족에다 방역 안전까지 챙기는 일거양득의 피서법이다. 이번에는 해양 모험 영화의 고전 <해전 2만 리>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958년도에 개봉한 고전 영화 <해저 2만 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는 1869년도에 쥘 베른이 쓴 동명 소설 ‘해저 2만 리’를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무성영화로도 제작됐고, 이후에도 몇 번 더 리메이크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사람들이 이 소설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첫째 이유는 원작을 쓴 작가 쥘 베른에서 찾아야 한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 작가이면서, 젊은 시절에 과학에 탐닉해 자신의 과학지식에 엄청난 상상력을 더해 작품 속에 그려냈다. 1870년에 발표한 ‘해저 2만 리’도 그중의 하나다.

나트륨으로 전지를 만든다?

작품 속 배경은 1866년으로,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 수수께끼의 괴물이 선박들을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자 미 해군은 이 바다 괴물을 제거하기 위해 순양함 링컨호를 파견한다. 여기에 과학자인 아로낙스 박사가 초청을 받아 동승하고, 그의 하인 콩세유와 작살잡이 네드랜드가 동행한다.

그러나 바다 괴물의 기습에 링컨호는 꼼짝 못 하고 좌초되는데, 바다에 빠진 아로낙스 박사의 눈에 비친 바다 괴물은 놀랍게도 잠수함 노틸러스호였다. 아로낙스 박사 일행은 모두 노틸러스호의 선원들에 의해 구조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이후 이야기는 네모 선장이란 독특한 캐릭터를 기점으로 펼쳐진다. 네모 선장은 망연자실해 있는 아로낙스 박사 일행들을 안심시키고, 그날 저녁에 해산물로 차려진 매우 풍성한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저녁 식사 후, 네모 선장은 아로낙스 박사를 잠수함 내부의 서재로 안내한다. 박사는 1만 2천 권의 장서를 소유한 서재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이곳에는 동서고금의 걸작들 외에도 기계학, 지리학, 천문학, 해양학 등의 과학 서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네모 선장은 일행에게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설명하면서 해저생활의 예찬론을 펼치지만, 과학자인 아로낙스 박사의 관심은 노틸러스호의 동력의 원천에 집중돼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네모 선장은 잠수함과 해저 세계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해주었다.

네모 선장에 따르면,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동력은 바로 전기였다. 그리고 그 전기의 원천은 다름 아닌 나트륨(Na)이었다.

그들은 해저 탄광에서 석탄을 채굴해, 이를 태워서 얻은 열로 바닷물에서 나트륨을 추출했다. 이를 다시 수은과 섞어 나트륨 전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노틸러스호는 이 나트륨 전지에 의해 움직였다.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선장! 당신은 전기의 진정한 동력을 발견하셨군요!”라며, 아로낙스 박사는 경이에 찬 감탄사를 연발했다.

<해저 2만 리> 속 나트륨 전지는 현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스마트폰부터 전기자동차까지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를 대체할 미래 배터리 후보로서 나트륨 이온 전지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실제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저장연구단은 기존 이차전지 소재로 사용됐던 리튬과 코발트 대신 바닷물(소금)을 이용해 이차전지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해저에서 자급자족하는 에너지

한편, 거짓과 전쟁이 계속되는 지상 생활이 싫었던 네모 선장은 장기적으로 해저 도시를 건설해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같이 그곳에서만 생활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그 해저도시는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모든 생활 물자들을 바다에서 구하고,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보장된 유토피아(Utopia)였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네모 선장, 아니 쥘 베른의 상상 속의 해저 유토피아는 150년이 지난 오늘날 어느 정도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해변 수심 19m 지점에 지상과는 완전히 독립된 ‘아쿠아리우스(Aquarius)’라는 해저 과학기지를 운영 중이며,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 역시 남중국해 바다 6,000m~1만 1,000m 수심에 인공지능(AI) 해저 무인 기지를 구축하는 ‘하데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지난 2014년에 일본 시미즈 건설은 수심 3,000~4,000m의 심해 미래도시 ‘오션 스파이럴(Ocean Spiral)’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는 해수의 온도 차를 이용한 해양발전을 통해 에너지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해양 온도차 발전(Thermal difference generation)이란 해수의 수심에 따른 온도의 변화를 이용한 발전 방식이다. 해수의 낮은 표층수와 깊은 심층수의 온도 차를 이용해 거기서 얻은 열로 암모니아 등을 기체로 만들고, 이 기체의 압력으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것이다.

비록 70여 년 전 영화이지만, <해저 2만 리>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를 위해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새로운 에너지에 대한 힌트가 가득하다. 무더운 여름, 안전하게 해양모험도 즐기며 미래세대 에너지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보고 싶다면 <해저 2만 리>와 함께하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