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테마 에세이

느끼고, 반복하고, 즐기고,
실천함으로써 변하는 것,
‘배움’


글_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

밖에서 들어온 정보로 내 안 무언가가 바뀌는 것이 ‘배움’이다. 몸으로 배우고 가슴으로 배운다는 말도 있지만, 배움은 하나 같이 모두 우리 머릿속 뇌의 일이다. 딱딱한 머리 뼈 안 말랑말랑한 뇌의 내부 배선을 뇌수술이 아닌 방법으로 바꾸는 것이 배움이다. 모든 배움은 뇌에 흔적을 남겨, 깊이 배워 깨닫고 나면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다. 배움과 깨달음은 ‘비가역(非可逆) 과정’* 이다.

* 비가역이란? 열역학 용어로, 이전 상태에서 현재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경우

공자가 말하는 배움의 방법

세상과 동떨어져서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 보고 배우고, 듣고 배우고, 읽어 배우고, 그리고 해보고 배운다. 배웠다고 해서 진정한 앎이 되는 것은 또 아니다. 공자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배우고 나서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밝게 깨달을 수 없다고(學而不思則罔). 공자는 배움에 관해서 멋진 말을 여럿 남겼다. 들어 배운 것은 잊고(聽卽振), 보고 배운 것은 기억(視卽記)하지만, 직접 해보고 배운 것은 깊은 깨달음으로 귀결된다(爲卽覺)는 말도 있다. 지혜를 얻는 세 방법 중 사색은 가장 고상한 방법이고, 모방은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경험이 가장 쓰라린 방법이라는 공자의 얘기도 책에서 읽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지만, 큰 노력과 고통이 함께해야 깊은 깨달음이 된다. 충분한 에너지가 숨은 열(Latent heat)로 유입되어야 물이 끓어 수증기로 변하는 상전이(相轉移)가 일어난다. 배움이 깨달음으로 변하기 위해서도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자가 말하는 배움의 과정

배움이 우리 뇌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현대 과학자는 오래전 공자보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뇌 안에는 시냅스라는 구조를 통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된 천억 개 정도의 신경세포가 있다. 다른 신경세포에서 시냅스를 거쳐 들어온 전기 신호가 충분히 강하면 신경세포는 짧은 시간 양의 전위차를 보이는 발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또, 두 신경세포가 함께 반짝 발화하면, 둘을 잇는 시냅스 연결의 강도가 강해진다. 신경세포 사이 연결의 상태와 강도가 바뀌는 것이 우리 뇌 안에서 배움이 구현되는 미시적인 방식이다.

맛있는 김치찌개를 보면 시각정보로 신경세포 A가 발화하고, 냄새를 맡으면 신경세포 B가 발화한다고 가정해 보자. 시각과 후각정보가 동시에 들어오면 A와 B가 함께 발화하는데, 김치찌개를 보고 냄새 맡는 과정이 여러 번 이어지면 결국 A와 B의 동시 발화로 둘 사이 시냅스 연결이 점점 강해진다. 이렇게 충분히 학습이 이루어진 다음 김치찌개 냄새로 B가 발화하면, 강화된 시냅스 연결로 A도 함께 발화하게 된다. 냄새만 맡아도 우리 뇌가 김치찌개의 모습을 생생히 떠올리는 정보의 연합(Association)이 가능해지는 메커니즘이다.

시냅스 연결이 충분히 강해지려면 정보 자극이 반복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보고 배우고, 듣고도 배울 수 있지만, 보고 듣고, 시각과 청각을 통해 함께 배우면 훨씬 더 뚜렷이 배우게 된다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직접 다시 해보고 배우는 과정을 이어가면 훨씬 더 철저히 배울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

반복과 감정이 만드는 기억

정보가 뇌에 저장되는 기억의 방식도 여럿이다. 친구가 전화로 알려준 다른 친구 전화번호는 10분만 지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바로 단기기억이다. 같은 자릿수여도 부모님 전화번호를 잊지 않는 이유는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장기기억으로의 전환은 우리 뇌의 안쪽에 있는 해마 부분이 담당한다. 해마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단기기억은 장기기억으로 바뀌지 못하고 곧 소실되지만, 뇌의 다른 부분에 오래전 저장된 장기기억은 문제없이 유지될 수 있다. 치매로 고생하는 노인 분들이 어제 일은 기억 못해도 30년 전 일은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다.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제대로 전환되려면 반복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을 오래 기억하려면 다시 반복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또, 우리의 감정이 장기기억의 저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일주일 전 혼자 먹은 맛있는 음식은 가물가물해도, 연애할 때 먹은 라면은 수십 년 지나도 기억이 생생한 이유다. 감정은 기억에 색색의 예쁜 표지를 붙이는 역할을 한다.

내용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서술기억도, 그럴 수 없는 절차 기억도 있다. 출근 길 교통편 기억은 당연히 서술기억이다. 어디서 버스를 타서 어디서 지하철로 갈아탔는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보통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는 ‘몸으로 배우는 것’이 바로 절차기억이다. 어떻게 타는지 백날 읽어도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 배울 수는 없다. 몸으로 배우는 절차기억은 직접 해보고 배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배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배움에는 왕도가 없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방법은 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보고, 읽고, 해보고, 동시에 여러 방법을 함께 이용해 배우고, 다시 배움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배울 때의 감정도 중요하다. 의무로 배우지 말고, 즐겁게 배우도록 노력하자. 배우고 익히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즐겁게 생각해야 우리가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배운 것을 실천해 보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힘든 경험이 불쏘시개가 되어 배움을 깨달음으로 바꾼다.

실패의 경험을 두려워하지도 말자. 저 멀리 솟은 깨달음의 고지에는 여러 번 넘어져본 사람만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