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테마 인터뷰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마음, ‘감사함’

‘유민준’ 前 부사장을 만나다


지난 2월, 우리 회사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오래 전 퇴직한 유민준 전(前) 부사장의 안부를 묻는 편지였다. 퇴직한 지 어느덧 20여 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헌신과 따뜻한 성품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뭇가지는 여전히 앙상해도, 곧 새순을 틔울 듯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날. 편지를 들고 유민준 전 부사장이 살고 있는 영월의 작은 마을을 찾아갔다.

글_임혜선 사진_김인규

UAE에서 날아온 편지, 영월에 도착하다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에 들어서자, 무릉도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듬성듬성 자리 잡은 집들은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집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감각적인 외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예쁜 집들 중 우리가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 기대감을 품고 달리길 한참, 어느덧 맞은편의 산과 마을 풍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 하얀 주택에 도착했다.

첫 만남인데도 유민준 전 부사장과 그의 부인은 살가운 미소로 낯선 방문객을 맞이했다. 어떻게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왔느냐는 물음에 UAE에서 날아온 편지를 전해주자, 유민준 전 부사장은 놀라면서도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전호광 씨가 지금 UAE에 있어요?” 조금 들뜬 목소리로 묻더니 곧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표정엔 애틋함과 후배를 향한 뿌듯함이 가득했다.

기술 자립을 위한 후배 양성에 앞장서다

전호광 UAE 본부장이 보낸 편지엔 우리 회사의 기술 자립과 정비 환경 개선,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 양성에 앞장선 유민준 전 부사장에 대한 감사함이 담겨 있었다.

1985년 12월, 당시 원자력부장으로 우리 회사에 부임하여, 2001년부터 부사장직을 역임하고 2002년에 퇴직한 유민준 전 부사장. 그는 우리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 직원들이 전기, 터빈, 펌프 등 정비의 기초적인 지식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정비에 필요한 기술력은 다소 부족하지 않나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주요 기기의 핵심 정비 기술을 외국 회사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계획정비 시 외국회사에서 온 분야별 전문가의 지원이 필수적이었어요. 정비회사인데 정비할 때마다 외국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하니, 전문 분야의 기술 자립을 위해 우리 기술자들을 양성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곧바로 기술개발계획을 수립한 유민준 전 부사장은 두 가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하나는 전 직원의 정비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에 교육훈련을 위한 연수원과 전문 분야의 기술 자립을 위한 전문원 설립을 추진하였다고. 이에 그치지 않고 원자력정비센터와 가스터빈정비센터, 정비기술연구소도 설립해 자체 기술자립의 기반을 구축했다. 정비가 운전과 함께 발전소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밑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편지를 보내온 전호광 UAE 본부장 역시 유민준 전 부사장이 추진한 해외교육을 통해 업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기술을 배우고 성장하며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그때의 전호광 본부장과 후배들이 느낀 감사함은 비단 그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유민준 전 부사장은 자신 역시 그때 당시 후배들이 보여준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제가 잠시 미국에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어요. 다녀왔을 때 깜짝 놀랐죠. 원자력정비센터가 생기고 그곳에서 기술 훈련을 받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무슨 일인지 센터가 설립되지 않은 거예요. 기술 훈련을 받은 직원들이 다 서울 본사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귀국 후 일주일 만에 센터설립 계획을 수립하여 상부보고를 하고, 한 달 만에 정비센터를 설립했어요. 그리고 후배들에게 말했죠. 다 고리(부산 기장)로 내려가야겠다고.(웃음) 사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거예요. 다들 서울에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전부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단 한 사람도 빠짐 없이요. 그때 정말 많이 놀라고, 후배들에게 감동도 많이 받았죠. 너무 고마웠어요. 그들을 보고 ‘아, 우리 회사는 앞으로 못하는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죠.”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고, 준비된 자는 겸손한 자이다

유민준 전 부사장의 이러한 노력과 여러 선‧후배의 힘이 합쳐진 덕분일까. 우리 회사는 이제 세계적인 정비 기업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법. 유민준 전 부사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물러나 이제는 부인과 함께 단 둘이 귀농생활을 즐기고 있다.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조언을 구하자,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자신감을 가지되, 항상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지금 우리 회사의 기술적 수준이 굉장히 올라가서 어느 부분에서는 고객사보다 뛰어난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알고 있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앞을 내다보며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가 잡는 것이잖아요.”

강원도 영월에 자리 잡은 것도 10년에 걸친 준비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유민준 전 부사장은 10년 동안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영월로 찾아와 텃밭을 가꾸고 집을 지을 구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곳곳에 유민준 전 부사장의 손길이 가득 묻은 목조주택에서 소박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제가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정원에 있는 평상, 그네, 방에 있는 테이블과 서각, 목공예 작품까지 전부 다 제가 만든 겁니다. 요즘은 서각뿐 아니라 서예와 영어 공부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낙이에요. 그러다가 텃밭도 가꾸고 아내와 같이 운동도 하고요. 은퇴 전에도 주말이 되면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냈으니 귀농이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꼭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유민준 전 부사장은 후배가 보내온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이렇게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준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말하는 유민준 전 부사장. 그의 환한 미소에서 우리 회사 후배들에 대한 여전한 애정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사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항상 역량이 부족해 제 일을 하느라 시간에 쫓겨 바쁘게 지내는 후배의 무능함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변의 선배님들을 통해 강원도에서 사모님과 함께 지내신다는 소식은 접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부사장님을 좋아하는 후배들이 많음은 선배님의 남다른 후배에 대한 따듯한 속정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도 제 주변에 있는 선배님들 중에 부사장님의 배려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시는 복지가 지금에 비해 매우 열악해 대부분 지방에서 생활하던 직원들이 서울의 높은 주택비용을 걱정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주저했는데, 부사장님께서 다양한 설득을 통해 서울로 올라올 수 있도록 하여 본사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1993년 웨스팅하우스의 엔지니어링 과정에 참여하기 전 본사에서 처음으로 부사장님을 뵈었습니다. 55주의 해외교육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분야별 담당자인 교육생들이 모두 7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직원들이었으나 저는 입사 3년 만에 교육에 참여해 더 없는 영광이었으며, 남다른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과정을 잘 마치고 이후 관련분야 업무 수행을 통해 역량을 키워 지금은 회사 역점사업의 한 분야인 해외 원전사업의 중요 보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당시 해당 교육을 주관하셨던 부사장님의 선택에 감사를 드립니다.

부사장님의 남다른 안목과 미래에 대한 혜안이 있어 분야별 체계적인 계획의 수립과 이행을 통해 오늘날 전 세계 그 어떤 회사에도 뒤지지 않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후배들이 부사장님의 헌신과 노력에 감사를 드리고 있으며, 저희들 역시 후배들을 위해 굳건한 기반의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의 회사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전호광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