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수빈 사진. 한국관광공사
오래될수록 가치가 깊어지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 제일은 역사와 자연이 아닐까. 그리고 이 둘이 함께했을 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찬란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올봄, 색다른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시간이 깃든 여행지로 떠나보자. 견고한 세월을 품고 피어난 봄이 당신에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신라시대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위양지(位良池)는 풀이하면 ‘백성을 위하는 못’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근처에 크고 작은 저수지가 생기며 이제 저수지의 기능은 하지 않지만 사시사철 짙은 녹음으로 여전히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둑을 에워싸고 적어도 수백 년은 된 듯한 왕버드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한가로이 거닐기 좋고, 봄이 오면 완재정이라는 정자 위로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절경을 자랑한다. 원래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완재정은 작은 다리가 설치되어 쉽게 걸어갈 수 있는데, 풍광을 한눈에 담고 싶다면 멀리서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고즈넉한 정자와 하얀 꽃이 만발한 이팝나무꽃, 못 위로 반짝이는 윤슬과 물에 비친 그림자가 신비로운 느낌마저 자아내기 때문이다. 일상과 현실을 차단한 채 자연으로부터 온전한 위로를 받고 싶다면 늦기 전에 위양지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
📞 055-359-5641
‘봄꽃’ 하면 흔히 벚꽃이나 개나리를 떠올리지만 매년 4월이면 충남 서산의 유기방 가옥 뒷동산에는 노란 수선화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1900년대 초 지어진 유기방 가옥은 서산 지역의 전형적인 전통 양반 가옥의 형태를 띠고 있다. 대문을 지나 안마당에 들어서면 북쪽으로는 ‘ㅡ’자형의 기다란 안채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행랑채가, 동쪽으로는 사랑채가 자리해 양반가다운 큰 규모를 자랑한다. 덕분에 2018년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유기방가옥에서 수선화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은 바로 대청마루. 후원에 만발한 수선화 꽃밭이 토담과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좀 더 가까이에서 꽃을 만끽하고 싶다면 뒷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울창한 솔숲 아래 빼곡하게 핀 수선화가 언덕과 산자락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다. 유기방가옥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는 서산의 대표 여행지인 해미읍성과 백제 시대 사찰 개심사도 있으니 함께 방문해 봄날의 평화로움을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72-10
📞 0507-1356-4326
1453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진 고창읍성은 당대 최신 병법과 축성 기술을 적용해 축조되었다. 당시 고창읍성 인근에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던 입암산성이 있었는데, 서해안을 노략질하는 왜구를 이곳에서 막아야 했다. 때문에 서해안 일대를 지키는 전초기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둘레 1,684m, 면적 약 16만㎡ 규모의 성을 3년에 걸쳐 완성했다. 조상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했던 단단한 옹벽은 이제 ‘고창읍성길’이라 불리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힐 만큼 수려한 경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봄이면 성곽을 따라 화려한 철쭉이 만개하는데, 굽이치는 붉은 꽃길을 따라 걸으면 고창 읍내 전망까지 두루 볼 수 있다. 일몰 이후에는 성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야경 명소로도 으뜸이다. 한편, 철쭉이 지고 나면 고창군 학원농장 일대에서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푸른 보리의 춤은 싱그럽게 생동하는 봄 그 자체이니 4~5월에 고창을 찾는다면 잊지 말고 기억해 두자.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1
📞 063-560-8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