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기 > 함께한 40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나다

글. 박향아   사진. 엄태헌, 조병우

열한 명의 한전KPS인이 창립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치열했던 ‘과거’를 통해 성장한 ‘지금’을 있게 한 선배와 선배들이 일궈놓은 ‘지금’을 디딤돌 삼아 더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후배. 한전KPS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했던 ‘특별한 축하 메시지’. 그들이 기억하는 40년과 함께 만들어 나갈 100년은 어떤 모습일지 만나본다.

#한전KPS를 이끌어온 리더 당신이 있어서 우리가 있습니다

정의헌 전 사장

회사를 나온 지 이제 제가 딱 6년이 지났는데요. 2022년부터 한전KPS 퇴직자 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회원만 1,500명 정도 되다 보니까 경조사 등등을 챙기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한전KPS에 몸담았을 때 가장 많이 했던 얘기가 ‘정체성’입니다. ‘바를 정(正)’ 자에 ‘몸 체(體)’,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이 곧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정체성이 명확하면 자연적으로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한전KPS는 특히 전력의 발전·정비를 책임지는 만큼 기술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 기업입니다. 그 무수한 인재들이 자긍심을 갖고 ‘한전KPS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면 그것이 곧 한전KPS의 정체성이 될 것입니다.

근무 당시에도 지금도, 11개의 전력그룹사 중 가장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우리 한전KPS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어온 지난 40년의 역사가 그 자긍심의 확실한 근거죠. 40년의 세월은 우리 인생에서 불혹에 해당하는 나이입니다. 불혹, 무엇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우리 모두가 한전KPS 일원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때,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수고해 주신 선후배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창립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황인옥 전 부사장

저는 작년 2월 말부로 36년 3개월간의 한전KPS 근무를 마무리하고, 6월 1일부터 인천 송도의 신재생발전소에서 대표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전KPS는 인생의 가장 왕성한 시기를 함께했던 소중한 직장인 동시에 저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몸은 회사를 떠나 있지만,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한전KPS의 성장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이뤄낸 40주년은 100년을 향한 또 다른 시작점입니다. 60년 후 100주년을 맞이한 우리 회사가 어떤 모습일지는 전적으로 우리 모두의 노력과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버려야 할 것과 계승해야 할 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건강한 기업 문화를 이뤄가는 것, 그리고 각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맡겨진 업무에 최선을 다할 때, 전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더불어서 외형적인 성장과 함께,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게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직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조직 문화 안에서 개인의 성장이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지길, 그로 인해 더 좋은 인재들이 오고 싶은 회사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40년 역사, 사건의 목격자 내가 기억하는 그때 그 시절

안덕용 월성1사업소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은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인 동시에, 한전KPS 일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와 모래바람으로 인해, 하루에 두 번씩 옷을 갈아입으며 근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나라보다 5배는 큰 메뚜기 떼의 습격도 쉽지 않았고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한전KPS가 뛰어난 정비 능력을 바탕으로 시운전 기간을 단축했을 뿐 아니라, 시운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는데요. 우리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고,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해외 프로젝트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공기 준수, 시간 준수가 가장 중요한데요. 앞으로 우리 후배님들이 어떤 돌발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탄탄한 실력과 해외 시장을 향한 더 큰 꿈을 키워나가길 바라며, 그 꿈과 실력이 우리 한전KPS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정경화 서울경기전력지사

2006년 개성공단의 전력 안전 공급을 위해 북한에 갔었던 경험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항상 북한 병사들이 감시하는 상황에서 작업을 해야 했기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 했죠. 한 번은 개성공단 내에서 소통 오류로 인해 단독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북한 병사에게 연행되어 초소에 40분가량 억류되어 조사를 받았어요. 말 한마디 없이 깃발과 호각 소리만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데, ‘과연 내가 무사히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죠. 당시에는 여기서 무사히 풀려나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도 1년에 5~6번씩 7년 이상을 개성공단에 출입했네요. 상황상 북한 주민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려웠지만, 만나고 헤어질 때 악수하면서 느꼈던 뭉클함은 여전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 고향이 개성인데, 우리의 기술로 개성의 전력 공급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류상돈 발전정비기술센터

저는 우리 회사가 창립된 1984년 4월 1일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인, 5월 1일 입사해 40년 동안 한전KPS와 동고동락해 왔습니다. 당시에는 회사 사옥이 없이 발전소 사무실 일부를 임대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정비원들은 마땅히 쉴 곳도 없었을 만큼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1999년 분당 신사옥에 입주했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최초 자체 사옥에 입주하는 것인 만큼 입주식을 성대하게 진행했는데, 제가 기수로 선발되어 행진을 했거든요. ‘창립 15년 만에 우리 회사가 이만큼 성장했구나’하는 마음에 한전KPS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한전KPS와 함께 출발하여 40년을 치열하게 달려왔고, 올해 7월부터 ‘임금피크제’로 전환이 되는데요. 이제 보직을 내려놓게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홀가분한 생각과 함께, 해야 할 일을 다 못하고 간다는 아쉬움도 큽니다. 하지만 실력과 열정을 갖춘 후배님들이 계시기에 저는 기쁜 마음으로 떠나며, 한전KPS의 무궁한 발전을 응원하겠습니다.

정회용 김포사업소

1993년도 11월에 기계직군으로 입사했으니, 한전KPS의 일원으로 함께한 지도 30년이 지났는데요. 많은 동료와 다양한 사업을 경험하면서 저 역시 많이 배우고 성장했던 30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회사에서 최초로 수행한 EPC 공사인 광양 포스코 성능개선공사부터 서인천 가스터빈 업레이트공사, 국내 최초로 제작한 가스터빈의 시운전을 마친 김포사업소까지, 다양한 신사업에 참여하면서 ‘도전’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처음 시도하는 것에는 늘 물음표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자문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후배들이 또 다른 도전을 할 때,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백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는 월급의 무게만큼은 열심히 일하자’는 마음으로 늘 최선을 다해왔는데요. 한전KPS인상을 받게 되었을 때, 그래도 월급 값은 했구나 싶어 뿌듯했습니다. 제가 임금피크제가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퇴직 후에라도 후배님들이 궁금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얼마든지 찾아가서 기술 자문을 해줄 용의가 있습니다. 모든 후배님들 사랑합니다.

황현아 감사실

지난해에 실장 승격 소식을 받았습니다. 한전KPS에 입사한 지 정확히 20년이 되는 때였죠. 승격에 대한 기쁨은 잠시였고, ‘창사 이후 최초의 여성 실장’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자연스레 지난 2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게 되었는데요. 사실 ‘잘해서 인정받아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급여 받는 날 급여에 부끄럽지 말자’는 마음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왔던 것 같아요. 부족한 역량을 채우기 위해 자기 계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과 감사 관련 자격증인 공인내부감사사 자격증도 취득했고요. 업무가 주어지면 답습하려 하지 않고 개선할 점은 없는지 고민하고, 반영했던 것도 성장의 발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각자의 때는 다르겠지만, 모든 노력은 나의 자산이 되어 빛나는 내일의 발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성장이 모여 전 세계, 더 나아가 우주로 뻗어나갈 한전KPS를 상상하며, 저도 새롭게 주어진 자리에서 늘 그랬듯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전KPS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지금도 역사는 기록된다

신지훈 일산사업소

일산사업소 기술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신지훈 팀장입니다. 2013년도에 입사해 2023년에 간부로 승격했으니, 사내에서 젊은 팀장 중 한 명인데요. 입사 때부터 승진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열심히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선배님들과 소통하며 그분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요. 좋은 팀장님들을 보면서 지금 이 자리에 오른 만큼, 저 역시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리더가 되고자 노력 중입니다. 물론 20대, 젊은 팀장이기에 부족하고 힘든 점도 있지만, 다른 협력사와의 관계 속에서는 ‘한전KPS’를 대표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품고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40년 가까이 여러 선후배님과 함께하게 될 텐데요. ‘신지훈’이라는 이름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동료들에게 기억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겠습니다.

김성현 태안사업처

저는 우리 회사의 창립일인 1984년 4월 1일에 태어난 김성현입니다. 2015년 입사 면접 때 한전KPS와 저의 신기한 인연을 얘기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40주년을 맞아 인터뷰하게 되어 영광이고 기쁜 마음입니다. 우리 회사가 40주년이 됐다는 것은 같은 날 태어난 저 역시 40대를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요. 가정을 이뤄 두 딸의 아빠가 되고, 후배들도 많이 생긴 만큼, 책임감의 무게와 생각의 깊이도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40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 회사가 더 단단하게 성장한 만큼 저 역시 성장했기 때문이겠죠. 앞으로도 한전KPS와 함께 더 멋진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현재 안전팀 일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무재해 사업장, 더 나아가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출근했다 퇴근할 수 있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연경 보령사업처

보령사업처 전기 2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연경입니다. ‘전기 엔지니어라면 발전소에서 전기 업무는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전KPS에 입사했을 때가 2020년이니, 벌써 4년이 지났네요. 첫 출근날 치열한 발전소 현장을 마주하고 ‘이곳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 버티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 현장에 여자 직원은 저 하나였던 만큼, 선배님들이 많이 배려도 해주셨지만,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었는데요. 그래서 더 열심히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했습니다. 그렇기에 한전KPS는 지난 4년간 가장 좋은 배움의 공간이었습니다. 40년 동안 앞선 기술과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신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지금 제가 안전하고 즐겁게 근무하며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김민정 신한울1사업소

2022년, SRT를 타고 나주로 입사식을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인생의 또 다른 지점으로 여행을 가는 것 같은 설렘도 있었고, 힘들었던 취준생 시절이 끝났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3년간 많은 선배님을 보고 배우면서 이제야 대학생 마인드를 내려놓고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갖춰가고 있는데요. 작은 일에 예민하기보다는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마음, 주변 동료들과 함께 협력하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 배움을 토대로 단독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실력을 쌓는 것이 첫 번째 목표고, 더 나아가서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며 한전KPS와 함께 더 큰 꿈을 키워가고 싶습니다. 60년이 지나 우리 회사가 100주년을 맞이할 때면 저도 90세 정도 되어 있을 텐데요. 그때도 자랑스럽게 ‘내가 한전KPS에서 일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