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수빈 사진. 엄태헌
지난 10월, 고리 원자력사업소 노명호 과장의 집에 기쁜 소식이 배달되었다. 둘째 딸 희주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스피드 계주 부문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것. 우연히 재능을 발견해 태극기를 가슴에 달기까지, 노명호 과장 부부는 언제나 딸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어릴 적 함께했던 추억을 되새기며 오랜만에 부녀가 실내 암벽등반장을 찾았다.
올겨울 가장 추웠던 한파특보가 내려진 어느 금요일, 두툼한 패딩으로 몸을 감싼 노명호 과장 부부가 딸과 함께 성남 실내 암벽등반장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노희주 선수 외투에 부착된 태극 마크.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자랑스러운 상징이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획득을 축하하자 해사한 미소로
화답하는 그녀 뒤로 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명호 과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도 그럴 게 딸을 처음 스포츠 클라이밍의 세계로 이끈 게 바로 노명호 과장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던 아이였어요. 원래 태권도 선수로 키우려고 했죠. 그런데 어느 날 학교 앞에서 나눠 준 암벽장 홍보 전단을 받아와서는 ‘여기 가보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마침 저도 운동을 좋아하니 같이 하자고 데리고 간 게 결국 국가대표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매사에 긍정적인 딸은 아무리 힘들어도 늘 웃으며 훈련에 임했다. 지난 5월 중순, 무릎 외측 측부인대가 부분파열 되는 부상을 당했지만 잘 이겨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로서 마음이 아픈 건 당연지사다.
“온통 상처투성이인 다리나 손에 박힌 굳은살만 봐도 안쓰러워요. 여름에 반바지 입으면 얼마나 신경 쓰이겠어요. 그런데도 자기는 그런 거 전혀 상관없다고 말해주니 늘 고마울 따름이죠.”
그렇게 기특한 딸 희주는 부상을 딛고 생애 첫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고, 부모님의 품에 값진 메달을 안겨드렸다.
오늘 부녀가 선택한 체험은 스포츠 클라이밍 중에서도 볼더링으로, 3~5m 높이의 낮은 벽에서 안전장치 없이 벽을 등반하는 스포츠다. 홀드라 불리는 알록달록한 돌 중 같은 색상의 돌만 잡고 밟으며 올라가는 게 볼더링의 규칙. 노희주 선수가 클라이밍 슈즈로 갈아 신고 준비하는 동안 노명호 과장이 먼저 감을 잡기 위해
홀드를 잡았다.
“예전에는 자주 했는데 쉰 지 오래돼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걱정도 잠시, 중급자 코스를 무난하게 성공하고 내려왔다. 이번에는 노희주 선수의 차례. 고개를 들어 전체를 쓱 보더니, 그새 루트를 짰는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척척 벽을 오른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눈 깜짝할 사이 정상에 올라 카메라를 위한 포즈까지 여유롭게 짓고 사뿐히 착지한다. 그 모습에 실내
암벽장에 있는 사람들도 어느새 모여들었다.
“클라이밍의 매력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뒤에서 응원을 해준다는 거예요. 오를 때는 혼자지만 같이 운동하는 느낌이 들죠.”
다시 노명호 과장의 순번이 돌아왔다. 홀드를 잡기 전 첫발을 어떻게 디디면 좋을지 묻는 아빠와 쉽게 갈 수 있는 루트를 알려주는 딸의 모습이 무척 다정하다. 한참 오르던 아빠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오른손을 뻗어서 그 위에 있는 홀드를 잡아요!”라고 외치는 노희주 선수. 아빠 손을 잡고 처음 실내 암벽장에
갔던 어린 딸은 어느덧 자라 아빠를 이끌어 주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린 아이에게는 아직 아무도 열지 않은 상자가 무수히 있다. 그 상자를 우리는 가능성이라 부르고, 그 안에 담긴 가치를 꺼내 키워주는 건 부모의 역할이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기에 부모는 아이의 재능을 유심히 관찰한다. 노명호 과장 부부 역시 둘째 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클라이밍을 지속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노력했다. 덕분에 노희주 선수는 클라이밍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정신력 강한 선수가 되었다. 운동할 때 가장 힘든 순간에 대해 묻자 “없다”고 답할 정도다. 운동선수라면 흔히 갖고 있는 루틴조차 없다.
“루틴을 만들면 오히려 못 지켰을 때 더 불안할 거 같아서 굳이 만들지 않았어요. 그냥 되는 대로 하자, 그날 경기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대회라도 긴장하는 기색 하나 없이 생글생글 웃어서 오히려 심사위원들이 비결을 물을 정도라는 노희주 선수의 꿈은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바람은 딱 하나,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는 암벽장을 차려서 운동을 좋아하는 가족들과 함께 클라이밍을 하며 지내고
싶다는 노명호 과장. 딸의 행복이, 나아가 가족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 믿는 그의 바람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전신 근육을 사용하는 클라이밍 특성상 시작 전 충분한 스트레칭은 필수. 안전한 추락법을 숙지한 후 등반해야 하며, 암벽화 역시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클라이밍 하기 전 다른 사람의 등반 루트와 겹치지 않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등반자의 안전한 착지를 위해 매트리스 위 공간은 비워 둬야 하며 등반하고 있는 사람 아래로 지나다닌 것 또한 금물이다.
내려올 때는 안전한 홀드를 잡고 천천히 내려와야 하며 뛰어내릴 경우 두발을 먼저 디딘 후 무릎을 굽혀 뒤로 넘어지는 게 관건. 뒤로 넘어질 때 두 팔은 매트를 짚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