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Essay

깊고 밀도 있는
집중력의 힘, 몰입

글. 한수빈(자유기고가)
참고도서.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인간의 꼬리가 점점 짧아지다 퇴화해 버렸듯 현대인의 집중력 또한 약해지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UC어바인대 정보과학 교수 글로리아 마크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평균 집중 시간은 단 3분. 이를 방증하듯 우리가 즐기는 영상 콘텐츠도 평균 15초에서 10분 이내 길이인 ‘숏폼’이 대세가 되었다. 어쩌다 현대인은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렸을까.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

뉴진스의 ‘Hype Boy’, 싸이의 ‘That That’, 아이브의 ‘Love Dive’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노래 길이가 3분을 넘기지 않는 2분대의 짧은 곡이라는 것이다. 10년 전 히트곡들의 평균 재생 시간이 3분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1분이 더 줄었다. 이는 음악뿐만이 아니다. 최근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 1분 남짓의 짧은 영상으로 이뤄진 숏폼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영화는 물론 드라마나 예능 방송의 핵심만 편집해 보여주는데,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누워서 손가락 하나로 1~2시간을 날려버리는 건 예사다. 문제는 이러한 ‘스낵 컬처(Snack Culture, 과자를 골라 먹듯 짧은 시간 동안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에 자주 노출될수록 오래 집중하고 몰입하는 게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볼 때면 중요하지 않은 장면을 건너뛰고 싶다든지, 배속으로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집중력을 잃어버린 건 단순히 스마트폰의 잘못일까?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산만의 원인을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개인의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크푸드를 중심으로 한 식품 공급 체계와 생활 방식의 변화가 비만율 증가를 만들었듯 집중력 위기의 광범위한 증가 역시 현대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 낸 유행병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원인 중 하나로 멀티태스킹을 지목한다.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이 마치 능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서류를 훑어보며 통화하고, 컴퓨터 화면에 여러 작업창을 띄워 두고 빠르게 업무를 전환하는 등 바쁜 현대인에게 멀티태스킹은 어찌 보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지만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미국의 스탠퍼드대학교, 영국의 런던대학교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업무를 전환할 때마다 두뇌 에너지가 고갈되어 뇌 기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인간의 뇌를 촬영한 결과 좌뇌와 우뇌가 따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으며 세 가지 작업을 동시에 했을 때는 기억력과 집중력이 현저히 저하되었다. 우리가 ‘모노(mono)태스킹’, 즉 한 가지 일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스낵 컬처(Snack Culture,
과자를 골라 먹듯 짧은 시간 동안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에 자주 노출될수록
오래 집중하고 몰입하는 게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볼 때면 중요하지 않은 장면을 건너뛰고 싶다든지,
배속으로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빠질수록 커지는 행복

몰입은 집중보다 더 좁고 깊은 영역이다. 무언가에 완벽히 빠져들었을 때 시간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게 이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 교수이자 ‘몰입(Flow)’ 이론의 창시자로 유명한 칙센트미하이는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 표현했다. 그러면서 ‘쉽지 않지만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덧붙이며 끝마친 뒤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었기에 의식을 성숙시킨다고 말했다. 등반가가 힘든 산을 오를 때, 성악가가 난이도 높은 노래를 소화했을 때를 생각하면 쉽다. 보통 사람은 요리나 운전,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 등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몰입을 경험한다. 저마다 몰입하는 조건도 환경도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더 깊이 빠져들수록 삶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유튜브나 TV를 보는 활동은 몰입의 즐거움으로 보기 어렵다. 집중은 하지만 수동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몰입에서 나오는 에너지, 잠재력을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고 싶다면 능동적인 활동이 기반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집중할 수 시간과 활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는 업무에도 적용된다. 많은 직장인이 책상에 앉아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집중력이 저하되면 자연스레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이는 업무 부담감으로 이어진다. 지금 당장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면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가져보자. 잠깐의 환기가 흐트러진 집중력을 모아주고 정신을 명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여러 업무를 보느라 집중하기 어렵다면 글로 정리하는 것도 방법. 맡고 있는 업무와 진행 상황, 데드라인 등을 메모하면 업무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기 쉬워 한 가지 일에 더욱 몰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상과 컴퓨터 속 필요 없는 물건과 파일을 정리하자. 정돈된 주변 환경은 무언가를 찾는 데 허비하는 시간과 에너지 소모를 줄여 준다.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 표현했다.
그러면서 ‘쉽지 않지만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덧붙이며 끝마친 뒤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었기에 의식을 성숙시킨다고 말했다.

꾸준하게 파고드는 디깅모멘텀

무난한 삶을 다채롭게 만들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몰입의 힘. 요즘 MZ세대의 트렌드는 한층 더 파고드는 과몰입, 즉 ‘디깅모멘텀(Digging Momentum)’으로 진화했다. 디깅모멘텀이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것으로, 원래 DJ가 자신의 공연 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음악을 찾는 행위인 ‘디깅’에서 유래되었다. 과거 ‘덕질’이라 불리며 은근하게 무시당했던 문화가 취향을 드러내는 게 곧 개성이라 여기는 세대로 교체되며 양지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재미를 위해 컨셉에 열중하고, 특정 물건이나 경험을 수집해 자랑하는가 하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소통하며 몰입의 레벨을 한층 높인다. 여기서 파생된 소비는 ‘디깅소비’라 불리며 시장 규모를 차지해가는 추세다. 한 공연이나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하는 ‘N차 관람’이나 희소성 있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오픈런’ 역시 ‘디깅소비’에 해당한다. 소비자는 일상의 재미를 개척하고, 판매자는 새로운 시장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과몰입의 선순환이 성립된 것이다.

이처럼 몰입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 업무로 점차 확장시켜야 한다. 몰입의 대가 에디슨은 전구를 만들기 위해 무려 2,000번의 실험을 했다. 전구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2,000번의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그는 한순간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수많은 실패에도 깊게 몰입해 끝내 발명가로서 이름을 남긴 에디슨처럼 몰입을 통해 자신의 업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더 가치 있는 업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몰입의 즐거움>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출판 해냄출판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