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향아 사진. 엄태헌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시선은 이제 한 사람을 향한다. 사랑에 빠지게 만든 남자의 선함과 여자의 환함을 쏙 빼닮은 아이, 수호를 바라보는 눈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애정이 가득하다. 해외원전사업처 김다혜 대리, 육아휴직 중인 신요한 대리가 막 걷기 시작한 아들 수호와 함께 10년 만에 다시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찾아 소풍을 떠났다.
운명 같은 사랑은 2020년 UAE 바라카에서 시작됐다.
1년 먼저 BNPP로 발령받은 신요한 대리는 여직원이 새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내 메신저를 켰다. 알고 보니 입사 동기. 반가운 마음과 함께 왠지 모를 설렘이 깃들었다.
“동기였지만 UAE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어요. 아내는 환한 웃음으로 주변을 밝히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평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해외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 속에 입국했던 김다혜 대리도 먼저 다가와 살뜰히 챙기는 신요한 대리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열렸다.
“현지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방에서 엄지 크기만 한 바퀴벌레가 나타났어요. 도움을 청할 때가 마땅치 않았는데 옆 동에 살고 있던 남편이 한걸음에 달려와 잡아주었죠.
평소 친한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의 매력에 물든 두 사람. 근무가 끝나면 함께 운동과 산책을 하고, 주말이면 두바이 곳곳을 여행하며 사랑을 키웠다. 낯선 타국에서 연인이 되고
어느새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둘의 사랑을 잇는 아기가 태어나 예측불가 육아의 세계에 들어선 지도 벌써 1년. 첫 생일을 맞이한 수호와 초보 엄마, 아빠로 애쓴
서로를 북돋아 주기 위해 김다혜 대리가 도시 전체가 정원인 순천만 여행을 신청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박람회장에 들어서기 전, 순천만에서 유명하다는 꼬막정식 한상을
받았다. 주인공 꼬막무침과 꼬막찜, 꼬막파전과 함께 간장게장, 낙지호롱이, 짱뚱어탕, 칠게튀김까지 화려한 조연들이 오감을 만족시켰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세계정원과 식물원이 있는 국가정원권역을 포함해 순천만 습지를 따라 걷는 순천만습지권역, KTX순천역부터 오천그린광장으로 이어지는 도심권역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규모를 자랑한다. 국가정원권역이 시작되는 동문에 들어서자마자 싱그러운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다가왔다. 구릉처럼 매끈하고 너른 잔디밭 아래로 만개한 튤립과
장미, 무스카리가 다채로운 빛깔을 뽐냈다. 수호가 낮잠 자는 시간은 부부의 휴식 시간, 유모차는 잠시 세워 두고 오랜만에 손을 잡고 걸어본다.
“UAE에서의 특별했던 시간이 생각나요. 그땐 남편과 둘뿐이었으니까 외식이든 여행이든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죠. 가끔 그 자유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한국에 먼저 입국해 수호의 100일까지 홀로 육아를 담당해야 했던 김다혜 대리, 아내의 애씀과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요한 대리는 귀국하자마자 육아휴직을 쓰고 바통을
이어받았다. 잠에서 깬 수호를 챙기는 부부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시원하게 뻗은 야자수와 거대한 코끼리 모형이 반기는 태국 정원을 지나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의 빌라를 재현했다는 이탈리아 정원으로 향했다. 유모차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은
수호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음을 옮긴다. 수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미니 분수 앞, 끊임없이 솟는 물을 신기한 듯 한참 바라본다.
“수호가 ‘물멍’을 즐길 줄 아네요. 셋이 나란히 걸으니 감회가 새로워요. 코로나 팬데믹이 풀려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나볼까 생각했는데 세계정원을 돌아보니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순천만습지권역과 도심권역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박람회장을 나와 휴식도 취할 겸 한옥 카페 ‘고데레’로 향했다. 한옥이지만 내부는 이탈리아 감성이 가득한 공간이다.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UAE 시절부터 마카롱을 자주 선물했다는 신요한 대리는 고데레의 ‘판나코타(우유와 생크림을 시원하게 굳혀 캐러멜시럽을 얹은 이탈리아식
푸딩)’로 아내 취향을 다시 한번 저격한다.
“부드럽고 달콤해서 행복감이 밀려오네요. 결혼 전에는 삶에 관한 걱정이 많았는데, 남편을 만나 아기를 낳으면서 비로소 완전한 삶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사랑하는 남편과
수호를 떠올리면 출근해서도 열심히 일할 힘이 납니다.”
다가오는 6월 복직을 앞둔 신요한 대리도 지금 이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보낼 생각이다. 가족이 곁에 있는 한,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순천만의 젖줄인 동천을 뱃길 삼아 동천부터 순천만국가정원까지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유유자적 뱃놀이를 할 수 있는 체험이다. KTX순천역에서 5분 거리인 동천
나루터에서 10인용 배를 타고 박람회장 내 호수정원 나루터까지 약 20분 동안 탑승한다.
성인 기준 편도 8,000원, 왕복 1만 2,000원.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를 잇는 무인궤도 차량으로 일명 ‘하늘택시’라 불린다. 순천만국가정원에 위치한 정원역에서 출발해 지상 3.5m~10m 높이의 레일을
따라 약 12분 동안 이동한다. 순천만역 하차 후, 낭트정원과 순천 문학관을 둘러보고 갈대열차(무료)를 타면 순천만습지로 이동할 수 있다.
성인 기준 편도 6,000원, 왕복 8,000원, 매주 월요일 휴무.
친환경 삼나무 캐빈에서 아무도 없는 60만 평 정원을 오롯이 누리는 특별한 1박 2일을 보내고 싶다면 서둘러 예약해야 한다. 호텔 수준의 다이닝 시설에서
순천지역 식재료로 만든 석식, 조식, 간식이 제공된다. 맨발로 정원을 걷는 아침 산책과 고요한 밤 자연 속에서 누리는 명상 프로그램은 덤.
평일 기준 30~47만 원. 주말 기준 40~57만 원.
사진출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모든 예약은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홈페이지
(https://scbay.suncheon.go.kr/expo)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