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향아 사진. 엄태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 온 두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되고, 사랑에 빠지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부부’가 되었다. 결혼 3개월 차, ‘깨소금 쏟아지는 신혼’을 즐기고 있는 고윤지, 유동영 직원이 경주를 찾았다. 함께한 세월만큼 달라진 풍경 속을 거닐며 지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는 두 사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둘만의 고운 추억이 또 하나 생겼다.
지나간 모든 시간을 ‘추억’이라 부르지 않는다. 떠올리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을 우리는 추억이라 부른다. 고윤지, 유동영 직원은 함께 공유한 ‘몽글몽글’한 추억이
한가득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싱그러운 여름, 캠퍼스에서 시작됐다.
“저는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복학생이었고, 윤지는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이었어요. 복학생의 별것 아닌 농담에 웃어주는 모습이 처음에는 고마웠고, 나중에는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 시답잖은 농담을 하게 됐어요. 더 많이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제가 윤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렇게 캠퍼스 커플이 된 두 사람은 서로의 청춘을 달콤한 핑크빛으로 물들였고, 8년의 세월이 지난 2022년 12월,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걸어도 좋겠다’는 확신과
함께 한 ‘식구’가 되었다.
식구(食口)를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함께 밥을 먹는 입’이란 뜻. 유동영 직원은 결혼을 해서 좋은 점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마주 앉아서 함께 밥 먹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고윤지 직원은 ‘눈에 띄는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가는 타입’이라면 유동영 직원은 ‘꼼꼼한 검색을 통해 검증된 맛집을 찾아가는 타입’이다.
이번 맛있는 경주 여행을 위해 유동영 직원이 찾은 식당은 ‘보문뜰’. 매콤한 갈비찜과 경주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한우 물회까지, 오늘도 남편의 선택은 아내를 미소 짓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근 농장에서 직접 키운 신선한 한우와 유기농 채소만을 사용한다니, 깊고 은은한 맛이 일품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경주를 여행할 시간. 첫 번째 목적지는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옛 경주역이다. 1918년 1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103년 동안 경주의 관문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던 경주역은, 이제 경주문화관 1918이란 이름을 달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월의 무게가 얹힌 낡은 간판 아래,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 대합실은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경주 여행을 시작했을 터. 두 사람에게도
옛 경주역은 추억의 공간이다.
“대학 시절, 크리스마스 때 오빠와 경주로 여행을 왔었어요. 울산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역에 내렸을 때 멀리서 들리던 캐럴과 사람들로 가득했던 대합실의 풍경, 그리고 설레던
마음까지... 경주역에 오니 새록새록 생각이 나네요.”
많은 이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 경주역은 이제 멋진 문화 공간이 되었다. 현재는 ‘경주문화관 1918’ 개관 기념으로 '빛과 색채의 마법사 클로드 모네' 전시가
진행 중인데, 앞으로도 다양한 전시와 문화 행사가 옛 경주역을 풍성하게 채워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직접 그린 그림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할 만큼 미술에 조예가 깊은 아내와 모네의 그림도 멋지지만 윤지가 그린 그림이 최고라는 팔불출 남편.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오늘을
기념하며 사진 한 장을 남겨본다. 함께여서 소중한 또 하나의 추억이 기록되는 순간이다.
오후의 빛이 강해질 무렵, 두 사람이 찾은 곳은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인 ‘동궁과 월지’다.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도 사용되었던 동궁과 월지는 달이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한
야경 명소다. 어둠이 내릴 무렵이 동궁과 월지 관람의 하이라이트라고 하지만, 햇살 아래 반짝이는 연못의 풍경과 여유로움은 한낮에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연못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친 오솔길을 천천히 거닐어 본다. 먹는 것에 진심인 남편을 위해 주말마다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해주겠다는 아내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윤지가 항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남편이 되겠다며 조금은 낯간지러운 고백을 하는 남편의 모습이 정겹다.
시원하게 뻗은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부서지고, 바람은 아직 차지만 꼭 잡은 서로의 손은 따뜻하다.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발걸음이 느려지지만 괜찮다. 경주에서 함께 한
오늘 하루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될 테니까.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31-1 일대 MAP
대릉원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황남동 고분쪽부터 노서동과 노동동 고분군 등을 포함한 일대를 말한다. 규모가 크고 경주시 시가지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천마총과 신라왕릉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고분도 있어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필수로 찾는 곳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1080 MAP
황남동 포석로 일대의 ‘황남 큰길’이라 불리던 골목길로, 전통 한옥 스타일에 트렌드가 더해진 카페와 식당, 소품샵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황리단길’이라고 불리게 됐다.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걸으면 첨성대와 대릉원 등 관광지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이곳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 MAP
경북 유형문화재 제191호인 ‘경주향교’ 옆,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나 있는 아름다운 숲. 경주 김씨의 지소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서려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무려 2,000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가 있다. 우람한 소나무부터 버드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등 뿌리 깊은 고목들이 울창하게 뻗어 있으니, 천천히 거닐며 숲에 깃든 세월을 곱씹어보는 것도 좋겠다.
사진출처: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