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장 일지

편견 없는 만남을 위하여
UAE 원전 근무 경험 수기

글. BNPP 사업소 기계부 윤영관 차장

한전KPS는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로 진출해 나가고 있다. 때문에 해외사업소에서 근무하는 한전KPS인들도 많다. 그중 UAE 원전에서근무 중인 BNPP 사업소 기계부 윤영관 차장의 생생한 현지 이야기를 수기로 받아 소개한다. UAE의 문화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윤영관 차장의 현장 일지를 함께 만나본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은 큰 행복이다

2021년 2월 UAE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까닭은 해외근무에 대한 갈망과 도전, 그리고 현재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안겨주고 싶은 가족애에서 비롯되었다. 나름 신중하게 미래를 위한 결정을 했지만, 집사람과 세 아이들을 뒤로한 채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싣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떠나는 순간 몇 번을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고 기내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쓴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고 아이들의 사랑을 느꼈다.

가족들의 생일 그리고, 국내 명절과 휴일이면 더욱더 가족이 그리울 때가 많았지만 동료들이 같은 마음으로 서로 어루만져주는듯 했고 한 때 작업장에서 만난 외국인 TA(Technical Assistant)의 어깨에 아로새겨진 글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家戀福泰 가족을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준 큰 행복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그동안 고국에서 잘 참고 응원해 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BNPP 1호기 잔여역무부터 4호기 상업운전까지 흔들리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은 그동안 이슬람 문화권인 UAE에서 경험했던 이야기와 이곳에서 갖게 된 새로운 시각들을 나누고 향후 해외원전사업, 더 나아가 해외사업에 참여하게 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게 되었다.

아부다비 VS 두바이

2013년 회사 출장으로 남아공행 비행기를 타고자 두바이공항에서 스톱오버를 한 적은 있었지만, 공항 밖으로 나와 UAE에 첫발을 내디뎠던 곳은 다름이 아닌 UAE의 수도인 아부다비였다.

UAE에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 아부다비가 UAE의 수도라는 사실을 알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UAE는 7개의 토후국을 가지고 있는데 아부다비는 그중 가장 큰 지역을 일컫는 말이자 수도를 동시에 지칭한다. 아부다비의 아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UAE 도시 중 아부다비보다 두바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인 부르즈 칼리파가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된 도시 중 하나이자 고급 스포츠카를 연상케 하는 풍요로운 도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UAE는 비록 이슬람권 국가이지만 ‘이슬람의 엄격한 규율’과 ‘국제화로 인한 자유로움’이 공존하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

한국에서 출발해 10시간 이상 걸려 도착한 2월의 아부다비는 상상했던 것과 달리 쌀쌀한 날씨여서 조금 놀랐다. 아부다비 공항은 여타 공항과 비슷하게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로 붐볐는데 특히나 인도인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치 인도에 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아부다비에 도착한 후에는 당시 코로나 유행으로 인하여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회사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격리되었는데 그나마 식사할 때는 호텔 내 레스토랑에 출입할 수 있어서 숨통이 좀 트였다. 숙소에서 나오면 레스토랑과 호텔 곳곳에서 나와 같은 격리자들과 호텔종사자 들을 볼 수 있었는데 호텔종사자의 대다수는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또는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로 보였고 인종도 참 다양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이곳은 외국인 인력들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나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1,000만 명 정도 되는 UAE의 총인구 중 에미라티라고 불리는 자국민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의 대부분은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이는 UAE가 많은 부분 외국에서 온 노동인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들의 경제적 성장 이면에는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일꾼들의 땀과 헌신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슬람 혐오 분위기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건너편에 살고 있었던 단짝 친구의 아버지는 중동 어딘가에서 일하시고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때가 ‘중동’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때인 듯하다. 오일머니를 벌어 더 나은 집을 마련하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갔을 것으로 생각하니 그들의 미래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앗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에 친구가 안타깝기도 했다.

한편, 테헤란로 인근에 살고 있을 때 강남 한복판의 큰 도로에 왜 중동에 있는 도시의 이름을 갖다 붙여놨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과거 이란과의 관계를 얼마나 깊이 맺었기에 그들의 수도의 이름을 붙여 놨을까 하며 의구심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자매결연으로 지어진 이름으로서 이란에는 ‘서울로(Seoul st.)’라는 길이 있다고 들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중동 지역에 대한 나의 인식이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TV에서 보도되었던 걸프 전쟁 발발 소식 이후였던 것 같다. 중동에서 연쇄적으로 발발한 전쟁들과 내전 소식을 접한 이후에는 종교적, 정치적으로도 매우 불안하고 복잡한 정세를 가지고 있는 일촉즉발의 탄약고 같은 곳으로 점점 인식이 바뀌어져 갔다. 급기야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이후, 중동=이슬람=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는 공식으로 국내외 언론과 국제사회는 연신 그들을 공격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국내외에는 이슬람 혐오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랐다.

나 또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연히 이태원을 지나가다 이슬람 사원을 보게 되었는데 그 외관만 보고도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정서인지 몰라도 한때 우리나라 대구 지역에는 이슬람 사원이 신축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역 주민의 반대운동이 기사화가 되자마자 대구 시민들뿐만이 아니라 종교계에까지 반대운동이 확산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처럼 뉴스와 언론은 잊을 만하면 이슬람과 중동 지역을 테러리즘과 전쟁의 온상으로 보도하고, 이슬람을 극단주의와 연결 지었다. 하지만 UAE에서 생활하며 직접 이슬람 문화를 접한 후, 나의 이러한 선입견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무슬림들의 기도와 라마단

인도의 보드가야란 곳에서 소리 없이 고행에 가까운 절을 하는 티베트 승려들을 본 적이 있다. 그 기도 방식이 하도 독특해서 기억에 남아있는데 무슬림의 기도는 그것과는 다르게 생활 속에 녹아있는 듯 해 보였다. 해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루에 다섯 번, 약간은 어두운 단조의 기도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온몸의 털이 서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처음 도착해서는 BNPP 내 이슬람 회당과 가까운 곳의 숙소에 배정받은 터라 한동안 소음공해로 인해 새벽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그들의 기도시간이 곧 기상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매일 듣다 보니 공해 수준의 소음도 일상적인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릴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적응기를 거쳐 기도하는 무슬림의 소리를 늘 듣고 있다 보니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 하루 일과를 기도에서 시작해 기도로 끝내는 무슬림들의 부지런함과 그 열의, 그리고 그들의 진정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차를 타고 가다가 시간이 되면 무슬림 사원에 가서 기도하거나 갓길에 주차해 놓고 기도하는 드라이버를 만나도 더 이상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전입 온지 몇 개월 뒤인 4월경에는 무슬림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라마단’ 기간이 도래했다. 이 기간 무슬림은 거의 한 달간 해가 뜬 시간에는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심지어 담배도 금하는 엄격한 금식 규칙을 따른다. 이런 이유로 비무슬림들도 낮 동안 음식이나 물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때 주의하게 되고 라마단기간 동안 무슬림들을 자극하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긴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금식 행위는 여러 종교에서 신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자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지만, 왠지 무슬림들에게는 한층 더 깊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았던 찰나 TV에서 우연히 라마단 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다.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무슬림이 옷이 남루한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영상과 함께 'The Month of Giving' 이라는 자막이 올라왔는데 그 순간 종교의 장벽을 넘어 따스함이 스며들었다.

금식을 지키는 기간임과 동시에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기간’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더욱이 금식하는 이유가 배고픈 자들을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그 가치가 더욱 높아 보였다. 마치 우리나라 기독교에서 행하는 ‘서울역 노숙자 밥차’ 같은 나눔과 ‘자선행사’라든지 불교의 ‘자비’나 ‘보시’라는 것과도 결을 같이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고 다른 종교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켜야 할 금식 기간만큼은 타 종교의 추종을 불허했다. 나 또한 이 계기로 무슬림을 따라 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에 좋다고도 하기에 금식에 도전하고 여러 가지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라마단이 끝나면 축제와 긴 휴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매년 3~5월 초승달이 뜰 때면 라마단은 다시 시작되었다.

투지의 사람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안내표지판. 투지의 사람들이라고 쓰여 있다.

UAE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점점 내가 알던 것과 다른 이곳만의 특이한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Toilet’ 대신 ‘Washroom’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단순히 변기를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도 전 손과 발을 씻기 위한 시설까지 갖춘 공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UAE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다름 아닌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의 표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라는 문구와 달리 ‘People of Determination(투지의 사람들)’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한동안 그 의미를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UAE는 장애인들의 도전, 의지 그리고 존중을 담아 투지의 사람들이라는 색다른 표현을 사용했고 그들의 장애를 약점이 아닌 강인함과 도전의 상징으로 여겼다.

최근 보았던 패럴림픽 경기 영상 중에서 양팔 없이도 물살을 가르는 중국인 수영선수나, 휠체어에 앉아서 범접할 수 없는 실력으로 탁구를 치던 우리나라의 주영대 선수를 보면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바로 UAE에서 일컬었던 ‘Disabled’가 아닌 ‘Determined’한 사람들이 아닐지 생각한다. ‘올림픽엔 영웅들이 탄생하고 패럴림픽에는 영웅들이 출전한다’는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이슬람 여성

최근 가족초청 휴가 때 나의 아내는 나와 아이들을 기다리던 중 카타르에서 온 이슬람 여성을 만났다.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데 아랍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와 깜짝 놀랐고 더욱이 그녀는 한국에 대한 엄청난 관심으로 말문을 이어 나갔다고 했다. 카타르보다 두바이가 더 덥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K-드라마, 김치, 사는 곳 그리고 한국 여행에 대한 동경까지 깊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슬람 남편이 그녀를 찾으러 올 때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헤어질 때는 아쉬운지 이메일까지 주고받으며 기약 없는 재회를 약속했다고 한다.

처음엔 아바야와 히잡을 착용한 그녀가 말을 걸어오자, 집사람도 이슬람 여성과 대화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처음엔 어색했고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고 했다. 같은 기간 중 히잡을 쓴 터키 여성 또한 한국 사람인 아내에게 먼저 말을 걸었는데 한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동안 쏟아내었다고 한다.

나와 나의 아내는 이슬람 여성들이 겉모습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활발한 면모와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고 이는 나와 내 가족이 이슬람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무너뜨린 경험이었다.

편견 없는 만남을 위하여

3년 남짓 UAE 생활을 통해 나는 이슬람과 중동에 대한 선입견을 어느 정도 깨뜨릴 수 있었다. 이곳 이슬람 온건파인 UAE에서는 만큼은 이슬람=극단주의=테러리스트라는 말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들리는 바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극단주의적 요소가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들도 있지만, UAE와 카타르 등 몇몇 이슬람 국가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나날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를 이루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종교적 색안경을 쓰고 이슬람을 보았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는 UAE에서 근무하는 동안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UAE에서 느꼈던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진정성 있는 만남을 이어가고, 서로의 문화적 배경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끝으로 한전KPS 원전 르네상스의 새로운 출발과 지속가능성은 기술 중시 문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편견 없이 만나고, 그들과 나누는 진정성 있는 대화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믿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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