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승연(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기자)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지속되었던 보복 소비 풍조가 점차 움츠러들고 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 불필요한 구매에는 지갑을 닫고, 꼭 필요한 물건만 사며, 나아가 지속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는 소비 형태 ‘요노’가 빠르게 채우기 시작했다.
욜로 경제, 요노 경제를 만나다(YOLO economy, meet the “yo, no” economy.)* 지난 6월 미국 CNN 보도에서 등장한 이 문장이, 현재의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욜로’는 2030세대를 주축으로 퍼진 소비 트렌드였다.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을 외치며 먼 미래에 대한 준비 대신, 나를 위한 또는 현재의 행복과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형태가 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욜로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갔는데, 이는
사람들이 지금 누리는 삶, 서비스 등이 언제든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엔데믹 이후에는 여유로운 소비와 경험 등을 즐기는 ‘보복 소비’ 열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고환율·고금리·고물가, 이른바 ‘3고 현상’이 장기화되며 경제에 대한 인식 또한 점차 바뀌는 추세다. 최근 1~2년간 미국의 2030세대 사이에선 과거 세대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소비 성향이 커져갔다. 이들은 대체로 물건의 구매 대신 렌트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소비자의 건강과 환경에 지속
가능한 가치를 고려하는 등 과도한 소비를 지양하고 있다.
글의 시작에 앞서 언급한 CNN 보도를 자세히 살펴보자. 해당 기사에선 ‘과잉 소비하던 미국 경제의 거품이 꺼지며 ‘Yo, No(야, 안돼)’ 경제가 되고 있다’며 ‘미국 소비자 지출이 감소했고, 미국의 고소득 미국인도 월마트와 같은 할인 소매업체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가 바로 ‘요노’이다. 욜로와 비슷한 용어처럼 보이지만, 의미는 사실상 정반대다. 요노는 ‘이것만 있으면 된다(You Only Need One)’는 문장의 약자로, ‘불필요한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수단이 아니’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Nicole Goodkind, 2024.6.4., ‘YOLO is dying. That could be bad news for the economy’ CNN 기사 인용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포괄적인 의미에서 ‘저소비’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했다. ‘저소비 트렌드’는 특히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의 젊은 층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2022년에는 ‘스스로의 지출을 아끼고 관리하자’는 가치관의 확산과 함께 ‘무지출 챌린지’ ‘짠테크’ ‘티끌족’ 등 자린고비로 대변되는
극단적인 소비 절약이 ‘도전(챌린지)’ 형태로 인기를 끌었다. 그 후 생활 전반적으로 불필요한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최소화한 필수품을 선호하는 등 요노 경제에 대한 개념이 국내외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지난 8월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Z세대 537명을 대상으로 소비 행태를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Z세대 10명 중 7명(71.7%)이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요노를 지향한다’고 답했다. 해당 설문에서 욜로를 추구한다는 응답은 25.9%였다. 지난해 조사 결과에서 57.3%가
절약하는 소비, 42.7%가 스스로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소비를 추구한다고 답하며 의견이 나뉘었던 것과 상이한 양상이다.
최근 요노 트렌드를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을 꼽자면 외식 산업 분야다. 국내에서 욜로 경제가 확산되었을 때 명품 소비, 파인다이닝, 맡김차림(오마카세) 식당 등이 인기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배달 음식이나 외식 등의 식비를 가장 먼저 줄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농협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부분의 외식 업종에서 2030의 소비 건수가 타연령대에 비해 크게 감소하는 수치를 보였다. 그리고 가성비 좋은 제품들, 간편식 등을 소비하는 성향이 높아지며 유통업계들은 고물가에 대비하는 실속형 상품들을 앞다투어 출시하는 등 최근 관련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요노 소비의 이면을 좀 더 살펴보면, 과거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결을 보인다. 요즘 20~30대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성향, 자아를 드러내는 데 익숙한 세대다. 또한 사회적 이슈, 문제의식에도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그들이 저소비 기조와 만나면서 소비 트렌드 역시 그 특성에 맞게 재편되었다.
일례로, 해외의 Z세대 사이에서는 해시태그 ‘#저소비코어Underconsumption Core’가 한차례 ‘밈(Meme: 인터넷 유행)’처럼 유행했다. 이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아이템을 사용하며 자신이 가진 물건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SNS에 소개했다. 부모님의 오래된 가방이나 깨끗한 옷을
물려받고,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를 여러 차례 이용하거나, 또는 치약 튜브나 화장품을 용기 끝까지 쓰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아끼는’ 행동을 보여줬다. 이런 ‘저소비 유행’은 무분별한 ‘SNS 소비’(틱톡이나 인스타그램 속 인플루언서들의 광고, 상품 추천 등으로 인한 충동구매)에 대응하는 ‘힙’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젊은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것을 찾아 기꺼이 발품을 판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중고시장에 재판매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순환’을 이어간다. 그리고 다방면에서 아낀 돈으로 자신의 취미, 여가생활, 경험 등에 소비해
얻는 ‘삶의 유희’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경제적 자립을 하고, 나아가 지속 가능한 소비를 통해 미래 가치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물론 이런 요노 트렌드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 또한 존재한다. 소비의 둔화는 경제침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에 따라 현재 기업들이 요노 트렌드에 어떻게 대응할지 그리고 앞으로도 초저가 시장, 가성비 시장이 얼만큼 경쟁력을 가질 것인지가 주목받고 있다.
삶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현재의 행복이 중요했던 욜로 경제가 어느덧 막을 내리며, 현재와 미래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요노 경제가 온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비 트렌드는 또 다른 변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결국 그 중심이 되는 소비자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관과 이에 부합하는 합리적
소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그리고 기업은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