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 라떼 이야기

뭉쳐야 이룬다!
‘우리’가 만든 찬란한 역사


글. 월성1사업처 최한식 前처장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경험과 노하우가 담겨있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법! 우리 회사에 남겨놓은 선배들의 발자취를 통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해 보는 시간, 그 첫 문은 월성1사업처 최한식 前처장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배움을 위한 합동작전

요즘엔 회사 인트라넷과 스마트한 근무환경 덕분에 각 지역은 물론 해외사업처까지 원활한 협업이 어렵지 않지만, 내가 입사 후 근무했었던 1990년대 만해도 지금과 같은 환경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오지 사업소라 불리던 울진1사업소에 입사해 기술 관리와 기술 용역 업무를 맡았는데 경상운전이 맞물린 기간이라 발전소 주위로 흙과 먼지가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인상 깊었던 기억은 주어진 환경은 열악했지만 모두 발전소 정상화를 위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서 일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배움을 위해 똘똘 뭉쳤던 에피소드 두 가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1990년대 초까지는 원자력에 대한 기술자립이 부족해 주요 핵심 기술 분야에 해외 출신의 기술자들이 들어와 정비와 검사를 주로 했었다. 당시 울진원자력발전소는 프라마톰사와 알스톰사에서 주기기를 공급했기 때문에 정기 점검과 계획 예방 정비를 할 때 해외 기술자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고, 나는 이를 배움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우리에게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짜 중요한 분야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심야에 본인들만 남았을 때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적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기술을 배울 수 있을지 고심한 끝에 각자 작업 환경에 24시간 내내 남아있자고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현장에 남아 그들의 업무 기술을 비디오카메라에 담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울진1사업처 자료실에 아직 그 비디오테이프가 남아있을 텐데, 어찌 됐든 배움에 대한 갈망이 만든 눈물겨운 합동 작전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나로 모여 펼친 007작전

울진1사업처 자료실에 남아있는 1990년대 울진원자력발전소
기술 작업 녹화 비디오테이프

다른 한 사례는 1996년도 미국 웨스팅하우스 서비스센터에서 3개월간 원자력발전소 주기기인 RCP모터 완전분해 기술 자립을 위한 공사를 수행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를 포함한 동료 3명이 함께 현장에 갔는데 울진원자력발전소 때와 마찬가지로 해외 기술자들이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우리에게 주요한 기술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시 우리는 기술 자립이라는 사명을 이루고 싶은 열정에 똘똘 뭉쳐있었기에 어떻게 하면 기술을 배울 수 있을지 또다시 고심했고 단계별로 진행되는 작업을 꼼꼼하게 메모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에 담으면 그만이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끈기와 종이, 그리고 펜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부터 해외 기술자들을 밀착 마크하며 그들의 기술을 악착같이 메모했다. 당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생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그때의 007 작전이 없었다면 기술 자립이 꽤나 늦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라면 못할 것이 없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서비스센터 근무 당시 기술 자립을 위해 노력한
최한식 처장과 동료들

“현역에 있을 때 잘해라. 우리 회사만큼 좋은 회사가 없더라.”

현역으로 근무할 때 퇴직한 선배들에게 늘 들은 이야기다. 물론 당시에는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나도 이제 퇴직을 하고 돌아보니 후배들에게 '자긍심을 갖고 일하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전기가 만드는 세상은 편리하고 때론 아름답지만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수고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국가와 국민들의 편리한 삶을 위해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사명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물론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한 결과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당장 눈앞에 결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설비 정비·점검으로 가동률을 높였을 때 세상은 그만큼 더 나아진다는 자부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우리처럼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회사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자산이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가 에너지가 된다는 것도 기억하면 좋겠다.

와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한전KPS 역사의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함께 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 역시 수많은 선배, 동료, 후배와 함께 역사를 이뤄냈듯 여러분 모두 두고두고 회자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