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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맞는 것’에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박세리의 리더십

골프 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박세리는 은퇴 후 감독, 방송인, 기업 대표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걸어왔다. 코트가 아닌 필드 위에서 혼자 싸우던 선수는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이기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가 선수 시절의 성취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는 순간은 자신이 우승할 때가 아니라, 누군가의 꿈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볼 때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쌓은 경험 끝에 박세리가 도달한 리더십의 결론은 무엇일까. 이번 호에서는 함께 성장하는 힘을 이야기하기 위해 박세리를 친구 추가했다.

글. 편집실 정리 사진. 바즈인터내셔널 제공

함께의 내일을 넓히다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선수일 때는 제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했어요.”

골프는 철저히 개인의 경기다. 스코어카드에 적히는 숫자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고, 그 시절 박세리에게 가장 큰 상대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다. 그러나 감독이 되어 조직을 이끄는 자리에 서면서 그는 전혀 다른 문제와 마주했다. 혼자 잘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 하나만 잘하면 되던 세계에서, 여러 사람의 역량이 하나의 결과로 모여야 하는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선수 시절에는 제 방식이 가장 맞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내가 맞는 것'과 '우리에게 좋은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걸 많이 배웠습니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박세리가 감독과 기업 대표를 거치며 얻은 답은, 리더가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장점을 발견하고 믿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목표와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다만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조율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방향은 리더가 분명히 세우되, 길을 걷는 방식은 구성원의 목소리 속에서 다듬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좋은 리더란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만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바라볼 때

그가 경험한 '좋은 팀'의 모습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박세리는 좋은 팀의 조건으로 뛰어난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역할을 정확히 아는 것'을 꼽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때, 팀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는 앞에서 이끌고, 누군가는 뒤에서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죠. 중요한 건 그 서로 다른 역할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팀을 이끌 때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위해 함께하고 있는지를 공유하는 데 공을 들였다. 목적지가 같으면 역할이 달라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에게 좋은 팀이란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함께 움직이는 팀'이다.

나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다면

박세리는 스스로를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은 사람이라 소개한다. 선수 시절에도 늘 낯선 환경과 상대를 만나야 했고,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도전이 이어졌다. 감독, 방송, 기업 운영을 거쳐 지금은 스포츠와 문화, 교육을 연결하는 일까지 영역을 넓혔다.

"처음부터 제가 모든 걸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느꼈고,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조금씩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나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골프를 한다는 것이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던 시절, 박세리는 많은 이들의 응원과 도움 속에서 길을 만들어왔다. 이제는 그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제가 걸어온 길을 통해 누군가가 조금 더 쉽게 도전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가장 구체적으로 담긴 곳이 용인의 복합스포츠문화공간 'SERI PAK with 용인'이다. 그는 이곳을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건 공간이 아니라, 스포츠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린이 골프 아카데미와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도 같다. 골프를 잘하는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스포츠와 문화, 교육이 한곳에서 만나 누구나 꿈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 시절의 목표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만의 꿈을 찾도록 판을 깔아주는 일에 가깝다.

"선수 때는 '무엇을 더 보여줄까'를 고민했다면, 요즘은 '어떤 경험을 더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그 서로 다른 역할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내가 해냈다'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로

보람의 기준도 달라졌다. 박세리가 꼽은 가장 벅찬 순간은 리우올림픽에서 박인비 선수가 금메달을 확정 짓던 장면이다. 직접 딴 메달도 아닌데, 그렇게 벅찼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선수 때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자신의 성취가 아니어도 누군가의 순간이 이토록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그때 처음 실감했다.

최근 그는 비슷한 감정을 'SERI PAK with 용인'에서 느낀다. 아이들이 골프 역사 전시관을 둘러보고, 가족 단위로 북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때다.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누군가의 일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것이 요즘 그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다.

"선수 생활의 보람이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이었다면, 지금의 보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확인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자신의 이름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쓰고 싶다고 답했다. 골프 하나에 머물지 않고, 스포츠와 교육,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아이들이 꼭 골프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스포츠를 경험하고, 책을 읽고, 문화예술을 접하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저에게 은퇴는 무언가를 끝내는 의미라기보다 또 다른 시작이었어요. 해보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가 그리는 장면은 분명하다. 자신이 먼저 새로운 길을 내고, 그 길을 다음 사람이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것. 그렇게 제2, 제3의 '세리키즈'가 스포츠뿐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에게는 앞으로의 가장 큰 도전이자 바람이다.

※ 이 인터뷰는 박세리 님의 서면 답변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