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업무에 지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나도 모르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순간. 익숙한 직장인의 고민도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마음의 방향을 전환하는 방법, KPS 상담소에서 함께 찾아보세요.
글. 이상혁 <이상혁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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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분명 설레던 일이었는데 요즘은 그냥 의무적으로 해치우는 것 같다는 느낌, 참 씁쓸하죠. 특히 “재미가 없다”는 말 뒤에는 죄책감이 따라와요. 예전엔 좋아했는데 왜 이럴까,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반복되는 업무에서 흥미가 떨어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거예요.
우리 뇌에는 새로운 자극에 반응하는 회로가 있어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게 낯설고 배울 게 많아서 뇌가 계속 “오, 이건 뭐지”하며 반응했을 거예요. 그런데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뇌는 더 이상 그 일에 특별히 반응할 이유를 못 느껴요. 이건 게을러진 게 아니라, 뇌가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거예요. 낯섦이 사라지면 설렘도 함께 옅어지는 거죠.
그런데 여기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요. 재미가 없어졌다는 감정 이면에는 대개 두 가지 서로 다른 결이 숨어 있거든요. 하나는 “이 일 자체에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정체되었다는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예전과는 다른 걸 원하고 있다”는 변화의 신호예요. 전자라면 같은 일
안에서도 조금 다른 방식, 다른 관점을 시도해보는 것만으로 다시 활기가 붙기도 해요. 후자라면 지금의 무료함은 단순한 권태가 아니라 “이제 다음 단계로 가고 싶다”는 마음의 목소리일 수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재미없음을 느끼자마자 “나는 이 일이 안 맞나봐”로 성급하게 결론짓지 않는 거예요. 어떤 일이든 익숙해지는 구간은 반드시 찾아와요. 그 구간에서 매번 그만두면 평생 익숙함의 문턱을 넘어보지 못해요. 오히려 그 지루한 시기를 지나고 나면 처음엔 안 보이던
깊이와 여유가 보이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나는 왜 예전 같지 않을까” 하며 자신을 다그치는 게 아니라, 이 무료함이 정체에서 온 건지 성장하고 싶은 마음에서 온 건지 구분하는 일이에요. 재미가 사라졌다는 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뭔가 다른 게 필요하다는 아주 정직한 신호예요. 그 신호를
한 번 제대로 들여다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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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경험, 다들 한 번쯤 해보셨을 거예요. 그 순간 스스로에게 “집중 좀 해”라고 다그치시기도 하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럴수록 딴생각은 오히려 더 커진다는 거예요. “분홍색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오히려 분홍색 코끼리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처럼요.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 뇌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느껴야 자원을 쏟아요. 그런데 일이 지루하거나, 의미를 찾을 수 없거나, 반대로 너무 부담스러울 때는 슬쩍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요. 그래서 산만함은 지금 이 자리와 나 사이에 뭔가 어긋난 게 있다는
신호예요.
그럼 왜 하필 회의나 업무 시간에 이런 일이 생길까요?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나눠 볼 수 있어요.
첫째, 몸과 마음이 이미 지쳐 있는 경우예요.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에서는 뇌가 가장 먼저 “집중력 유지”라는 고급 기능부터 꺼버리거든요. 둘째, 지금 하는 일에 확신이 없는 경우예요. 이걸 왜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납득이 안 되면 마음은
자꾸 다른 곳에서 의미를
찾으려 해요. 셋째, 너무 긴장한 경우예요. 결과에 대한 압박감, 평가받는 느낌이 클수록 뇌는 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딴생각이라는 도피처를 만들어요.
따라서 중요한 건, 이 세 가지 중 무엇이 지금 나에게 해당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거예요. 원인이 다르면 다뤄야 할 방법도 달라지거든요. 지쳐서 그런 거라면 억지로 일을 붙들고 있기보다 휴식이 먼저고, 의미를 못 느껴서라면 그 일과 나 사이의 연결고리를 다시 찾아보는 게 먼저고,
긴장감 때문이라면 잘해야 한다는 압박부터 살짝 내려놓는 게 먼저예요.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건, 주의력은 계속 켜져 있는 스위치가 아니라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흐름이라는 거예요. 잠깐 흐트러졌다가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요. 그러니 완벽한 집중력을 유지하려 애쓰기보다, 흐트러졌다는 걸 알아챈 순간 눈앞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오는 연습이
훨씬 도움이 되고 오래가요.
중요한 건, 산만해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걸 실제로 느끼고 있다는 거예요. 스스로 다그치지 말고 들여다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A
동료의 승진 소식을 들으면 이상하게 한동안 마음이 붕 뜬 채 가라앉질 않을 때가 있어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그 소식을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그런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 자책하기 전에, 먼저 비교라는 반응이 어디서 오는 건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어요.
인간은 원래 무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도록 진화한 존재예요. 옛날에는 무리 안에서의 서열이 생존과 직결됐거든요. 그래서 누군가 나보다 앞서가는 것 같으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나는 지금 안전한가?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를 점검해요. 이처럼 동료의 승진 소식에 마음이
출렁이는 건 아주 오래된 생존 회로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비교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비교 뒤에 어떤 말이 따라붙는가예요.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안 되네”라는 말이 따라온다면 그건 자신을 깎아내리는 비교고, “저 사람 승진했구나,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말이 따라온다면 그건 자신을 발전시키는
비교예요. 같은 비교에서 시작했지만, 뒤에 붙는 문장 하나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이끄는 거죠. 그러니 다음에 비슷한 순간이 오면 불편한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뒤에 어떤 말을 더하고 있는지 들여다봐 주세요.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건, 비교가 유독 아프게 느껴지는 순간은 대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라는 거예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이 단단할 때는 남의 이야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아요. 반대로 내 안에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불안이 있을 때,
동료의 소식은 그 불안에 불을 붙이는 방아쇠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진짜 들여다봐야 할 건 내가 나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예요.
비교하는 마음 자체를 없애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건 우리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자연스러운 감정이거든요. 그 순간의 씁쓸함을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이제 시작해보자”로 바꿔 읽어보는 것, 거기서부터 다시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시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