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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 교수의 몰입의 조건
어제보다 오늘
더 가슴 뛰는 이유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되면 으레 타성에 젖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눈빛에 열정보다는 관록이 깃들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전KPS가 만난 박용우 교수의 시간은 여전히 청년의 그것처럼 역동적이다. 1991년 국내 최초로 비만클리닉을 개설하며 비만을 치료해야 할 질병이자 대사의 영역으로 정립한 지 어느덧 35년. 독보적인 권위자라는 위치에 안주할 법도 하건만, 박용우 교수는 진료실을 넘어 집필과 강연, 미디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해 나간다. 이미 수많은 성취를 이룬 뒤에도 멈추지 않고, 어제보다 설레는 오늘을 만들어가는 박용우 교수의 몰입 비결을 들여다보았다

글. 박향아 사진. 조병우

체중계 눈금 너머, 환자의 삶을 읽다

1991년, 강남 청담사거리에 국내 최초로 비만클리닉의 문을 연 이는 젊은 날의 박용우 교수였다. ‘비만’이라는 단어가 그저 개인의 게으름이나 부유함의 상징쯤으로 여겨지던 시절, 박 교수가 이 생소한 의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유는 명확했다. 현대 의학이 위, 간, 장 등 장기별로 환자를 조각내어 진료하는 세분화에 집중할 때, 그는 질병이 아닌 ‘환자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가정의학과의 본질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라.’ 수십 년간 굳어져 온 칼로리 중심의 다이어트 상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박용우 교수는 체중계의 숫자에 집착하는 대신, 비만을 ‘망가진 대사 조절 시스템의 문제’로 규정하고 근본적인 치유에 집중했다. 수많은 이들이 패배감에 젖어있던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벗어나, 건강한 몸의 스위치를 다시 켜는(Switch-on) 패러다임의 전환을 끌어낸 것이다.

“비만 치료는 영양학, 운동생리학, 심리학이 모두 융합되어야 하는 토탈 케어입니다. 체중 감량을 돕기 위해 치료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환자가 고혈압이나 당뇨약을 끊고 삶의 활력을 완전히 되찾더군요. 의사로서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체중계 눈금 뒤에 숨은 본질을 꿰뚫는 낯선 제안은, 수많은 이들의 실제 경험을 통해 증명되며 사회적 열풍으로 이어졌다. 미디어의 러브콜이 쏟아졌고, 그의 독창적인 대사 회복 프로그램을 담은 저서 <지방 대사 켜는 스위치온 다이어트>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독자들의 삶에 변화를 만들었다. 황무지에 깃발을 꽂았던 개척자의 고단함은, 환자의 삶이 변화하는 벅찬 순간들과 맞물려 어느새 대체 불가능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역설적이게도 이 일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치열하게 ‘알아야(知)’만 하더군요.”

영원한 ‘얼리어답터’, 알기에 즐길 수 있는 시간들

한 분야의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면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거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쉽다. 하지만 박용우 교수는 여전히 스스로를 배우는 것이 즐거운 ‘얼리어답터’라 칭한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하죠. 저는 지금 비만 연구를 즐기는 단계에 왔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일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치열하게 ‘알아야(知)’만 하더군요.”

박용우 교수가 말하는 즐기기 위한 전제조건은 끊임없는 배움이다. 새로운 논문과 치료법이 발표되면 그는 누구보다 먼저 찾아보고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해 본다. 몸소 겪고 확신을 얻은 방법론을 세상에 가장 먼저 소개해 변화를 만들어가는 짜릿함이 그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배움을 향한 갈증은 진료실과 연구실 밖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국제 학회나 세미나 참석을 위해 해외에 나갈 때마다 박 교수가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은 유명한 관광명소가 아닌, 수십 년의 세월을 품은 오래된 전문 서점이다.

“해외에 나가면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의학 전문 서적이 빼곡한 고서점이나 대형 서점을 꼭 찾습니다. 수천, 수만 권의 책들이 꽂힌 서가 사이를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정보, 내가 놓치고 있던 본질을 담은 책들이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거든요. 무수한 지식 중에서 진짜 나에게 필요한 알맹이를 가려내는 눈은 결국 오랜 몰입이 선물한 감각이겠죠. 그렇게 사 들고 온 책들을 밤새 들추며 현재의 나를 점검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지식을 채워 넣는 그 비밀스러운 시간만큼 저를 설레게 하는 건 없으니까요.”

비워낸 시간에 찾아온, 진짜 몰입의 순간

이토록 단단한 몰입의 엔진을 갖추기까지, 박용우 교수에게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던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강남 중심가에서 개원의로 질주하던 시절,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다는 압박감과 병원 운영의 책임감은 그를 지독한 번아웃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박 교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개원의의 삶을 정리하고, 방송 활동을 병행하기 위해 ‘주 3일 진료’라는 조건으로 다시 대학병원에 복귀한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겼다. 섭외되었던 방송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폐지되면서, 일주일에 나흘이 붕 뜨는 이른바 ‘생애 첫 공백’이 찾아온 것. 평생을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멈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를 당혹감’으로 다가왔다.

“학창 시절부터 의대, 그리고 개원의 시절에 이르기까지 제 삶에 빈틈이란 없었습니다. 5분, 10분의 짧은 대기 시간조차 허투루 보내지 않았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저에게 곧 불안이자 강박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제로 밀려온 나흘의 여백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군요. 타인의 시선이나 의무감을 걷어내고, 내가 진짜 좋아하고 가슴 설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요.”

그 질문 끝에 찾아낸 답이 바로 기업 진료 프로젝트였다. 타깃은 명확했다. 최고 수준의 사내 병원과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도 직원들의 비만과 성인병 비율이 날로 치솟아 골머리를 앓던 삼성전자였다. 환경이 아니라 ‘방식’의 문제임을 직감한 그는, 직장인들의 패턴에 맞춘 ‘스위치온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하지만 낯선 프로그램을 향한 직장인들의 관심은 저조했고, 겨우 한 팀을 꾸려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굶고 버티는 다이어트 대신 망가진 몸의 대사를 회복시키자 단기간에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났다. 동료들의 극적인 변화를 두 눈으로 목격한 직원들의 참여가 빠르게 번져나갔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수십 개의 팀을 연달아 상대하며 쉴 틈 없이 진료와 강연을 이어가는 엄청난 강행군이 펼쳐졌다.

개원의 시절보다 빽빽하게 채워진 일정이었지만,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내가 좋아서 보람을 느끼며 하는 일’이었기에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펄펄 날았다. 맹목적으로 물리던 쳇바퀴를 멈추고 진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로 일상의 여백을 채워 넣으며, 스스로 무너진 밸런스와 열정의 스위치를 완벽하게 리셋한 것이다.

연구실을 넘어 대중의 일상 속으로

삼성전자 프로젝트를 통해 삶의 스위치를 다시 켠 박용우 교수의 행보는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현재에 안주하는 대신 책과 유튜브를 통해 대중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깊이 있는 연구에 몰두하는 교수의 보편적인 역할과는 또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학문적 성과를 증명하는 논문 집필도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저는 논문 한 편을 더 보태는 학자로서의 삶만큼이나, 대중의 눈높이에서 지금 당장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바꿀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에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의사의 책임이자 소명입니다.”

박용우 교수의 시선은 늘 거창한 이론보다 사람들의 일상과 밥상머리를 향해 있었다. 최근 신간 도서 <내 몸을 바꾸는 집밥테라피>를 펴내며 대사 회복을 위한 ‘건강한 집밥’이라는 다정한 화두를 던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서,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어려운 의학 지식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일. 그것이 35년 차 비만 권위자가 대중을 향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몰입이다.

우리는 흔히 몰입을 ‘참아내고 버티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박용우 교수가 걸어온 길은 진짜 몰입이란 끊임없이 내 안의 재미를 발굴하고, 유연하게 변화하며, 스스로의 행복을 주도적으로 책임지는 과정임을 증명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맹목적인 의무감이 아닌, 내 삶의 즐거움을 선택하고, 그 크기를 더하기 위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 그것이 박용우 교수가 말하는 몰입의 기술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면, 오늘 당장 내 안의 작은 호기심의 스위치부터 켜보는 것은 어떨까. 박용우 교수가 보여주었듯, ‘여전히 설레는 일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매일은 충분히 더 다이내믹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