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에너지 내일의 에너지

탄소중립 시대,
진화하는 바람의 기술

탄소중립이 정책 구호를 넘어 실질적 이행 단계에 접어들며, 풍력발전은 전력 전환의 핵심 전원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보조적 재생에너지로 인식되었던 풍력은 이제 기술과 규모, 운영 방식 모두 빠른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며 주력 전원의 반열에 올라섰다. 대형화, 해상화, 디지털화를 기반으로 탈탄소를 위한 전력 계통의 축으로 자리 잡은 풍력발전의 흐름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글. 한수빈
참고자료.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 한국풍력산업협회

바람으로 넓히는 전력의 지평,
대형화와 해상화

풍력 기술의 진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커진 터빈의 크기다. 초창기 육지에 설치했던 상업용 풍력터빈이 1~2MW 크기였다면, 현재는 5~7MW급이 보편적이다. 해상으로 눈을 돌리면 더욱 거대해진 터빈을 볼 수 있다. 10MW를 넘어 15MW 이상의 초대형 터빈이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로터(바람의 운동 에너지를 받아 회전하는 부분, 날개와 이를 연결하는 허브를 포함한 회전체를 말함)의 직경은 축구장 여러 개에 맞먹고, 타워 높이는 200m를 넘어선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크기이니 대형화를 먼저 이야기했지만, 설비가 커졌다는 것은 단순히 출력 증가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동일한 발전 용량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터빈 수가 줄어들면서 기초 공사, 해상 시공, 유지관리 비용 모두 효율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높은 허브 높이와 넓은 회전 면적은 바람이 약한 조건이라도 발전량을 확보해 설비 이용률을 개선한다. 덕분에 풍력의 발전단가(LCOE)는 점점 하락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화석연료 발전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정책적 지원에만 의존하는 에너지가 아닌, 경제성을 갖춘 에너지로 거듭난 것이다.

바다로 무대를 이동한 것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입지 제약과 수용성 문제로 육상 풍력 확대가 점점 어려워지며 풍력발전은 바다로 옮겨갔다. 해상은 풍속이 높고 일정해 발전 효율이 좋고,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기에 유리하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가 2024년 발표한 ‘세계해상풍력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풍력발전 총 용량은 전년 대비 24%가 증가했으며, 2030년까지 높은 성장률이 꾸준히 지속될 거라는 전망이다. 향후 10년 동안 410GW 규모의 새로운 해상풍력발전 시스템이 추가로 설치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이처럼 해상풍력발전은 몇 년 사이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다.

세계 해상풍력발전
시장을 이끄는 나라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상풍력발전을 가동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2023년을 기준으로 중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등 5개 나라가 세계 해상풍력발전 용량의 88%를 차지하고 있는데, 중국은 그 중 무려 49%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자랑한다. 해상풍력의 빠른 확대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과 풍부한 연안 자원을 바탕으로 한다. 큰 땅 덩어리만큼 거대한 해안선과 높은 풍속 자원을 활용해 해상풍력 개발을 전략적으로 추진했고, 2010년대 후반 이후 설치 속도가 급격히 증가하며 전 세계 해상풍력 설비의 절반 이상인 약 41GW가 중국에서 가동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해상풍력 에너지를 생산하는 나라는 영국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 주도 하에 해상풍력 개발이 체계적으로 추진되며 해상풍력발전의 역사와 현재를 대표하는 전통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는 노스 호일(North Hoyle)이라는 영국 최초의 상업용 단지가 상용화되었고, 2010년대에는 100기 이상의 풍력터빈으로 구성된 단지와 500MW급 이상의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규모를 키웠다.

특히 2013년에 완공된 런던 어레이(London Array)는 한때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였으며, 이를 계기로 해상풍력 설비 확대 속도에서 선도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최근에는 다양한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덴마크의 재생 에너지 기업 ‘오스테드(Ørsted)’와 함께 추진한 ‘혼시 프로젝트(Hornsea Project)’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며 여러 단계로 확장을 거듭해 수백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독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은 2010년 북해에 건설된 ‘알파 벤투스(Alpha Ventus)’ 실증단지를 시작으로 해상풍력 산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에너지전환 정책의 하나로 북해와 발트해를 중심으로 대형 단지를 확충하며 꾸준히 설비를 늘려왔다. 현재 약 9GW 이상의 해상풍력 설비를 운영 중이며, 2030년까지 30GW, 장기적으로는 70GW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특히 해상에서 생산된 전력을 산업 지대로 안정적으로 송전하기 위해 초고압 직류송전(HVDC)망을 강화하는 등 계통 연계까지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점이 독일 해상풍력 전략의 특징이다.

1991년 세계 최초의 해상풍력단지인 빈데뷔(Vindeby)를 건설하며 해상풍력의 ‘원조’로 불리는 덴마크도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 설비 규모는 약 2~3GW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터빈 제조사와 개발 기업을 배출하며 기술과 운영 경험 측면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한편 최근에는 대만이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최적의 해상풍력 입지를 보유하며 타이완 해협 인근에 대만의 1호 해상풍력 단지인 포모사(Formosa)1을 시작으로 이보다 3배 더 큰 용량의 포모사2까지 2023년 가동시키며 단 4년 만에 해상풍력 규모 세계 7위, 아시아 2위를 거머쥐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발전소,
부유식 해상풍력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는 바로 ‘부유식 해상풍력’이다. 기존 해상풍력은 바다 바닥에 기초 구조물을 고정하는 ‘고정식’이 일반적으로 수심 약 50m 내외까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바람의 조건이 우수한 해역 상당수는 수심 60~200m 이상의 깊은 바다에 위치한다는 게 문제였다. 특히 일본, 미국 서부, 노르웨이 등은 연안의 수심이 깊어 고정식 설치가 쉽지 않았고 우리나라 역시 동해와 남해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수심이 깊은 해역이 많아 고정식 해상풍력의 경제성이 제한적이다. 이에 반해 부유식 해상풍력은 터빈을 바다 바닥에 고정하지 않고 부력 구조물 위에 올려 띄운 뒤 해저에 계류하는 방식으로 고정한다. 이는 마치 거대한 해상 플랫폼 위에 풍력터빈을 세우는 형태로 수심에 구애 받지 않고 설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바꿔 말하면 수심 때문에 해상풍력 발전이 어려웠던 지역에서 부유식 해상풍력은 풍력발전 확대의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심, 파도 조건, 해저 지형, 설치 방식에 따라 적합성이 달라지며 상업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전체 해상풍력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세계 최초 상업용 부유식 해상풍력단지인 노르웨이의 Hywind Scotland, 유럽 최대 규모의 부유식 단지 중 하나인 영국의 Kincardine 프로젝트가 현재 가동 중이며, 프랑스와 일본, 미국 서부에서는 대규모 상업 프로젝트를 입찰 및 개발을 시작했다. 한국도 울산을 중심으로 부유식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이후 부유식 해상풍력이 본격적인 시장 확장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 전망했는데, 만약 기술이 안정화되고 대형 터빈과 결합한다면 단지 규모가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파도, 조류, 태풍 등 불안정한 해양 상황에서의 구조 안정성과 계류 시스템의 내구성, 해저 케이블 피로 문제, 유지보수 접근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또 우리나라처럼 태풍 영향권에 있는 나라일 경우 안전과 구조 보강 기술이 뒤따라야 한다.

데이터를 읽는 발전소,
디지털화와 운영 혁신

풍력발전의 또 다른 진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화’가 바로 그것으로 최근 설치되는 풍력터빈은 단순한 회전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데이터 플랫폼에 가깝다. 터빈 내부에는 수백 개의 센서가 장착돼 진동, 온도, 회전 속도, 출력, 기어박스 상태 등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이 데이터는 통합 운영 시스템으로 전송된 후 분석되며,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해 고장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과거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정비하는 ‘사후 대응’이 일반적이었다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제적으로 조치하는 체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해상풍력은 접근성이 낮고 기상 조건에 따라 작업 일정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운영이 더욱 절실했다.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수십 기, 많게는 수백 기의 터빈 상태를 한 번에 관리하고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가상 공간에서 설비 상태를 재현하고 분석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한다.

이 밖에도 드론과 로봇을 활용한 블레이드 점검 기술도 확산되고 있어 사람이 직접 해야 했던 작업의 위험성이 줄고 있다. 이처럼 운영과 정비 방식의 디지털화는 풍력발전의 미래로도 직결된다. 설비 수명이 20~25년에 달하는 만큼 장기적인 가동률 확보와 안정적 계통 연계가 사업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 정밀한 풍황 예측과 발전량 예측은 전력 시장으로의 연계를 최적화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의 통합 운영은 출력 변동성을 완화한다.

이처럼 풍력발전은 단순히 터빈의 크기를 키우는 산업을 넘어 한계를 극복하는 종합 에너지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풍력발전의 경쟁력은 단순한 설비 확대를 넘어 안정적인 운영 체계와 전력 계통을 조화롭게 연계시키는 역량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바람이라는 고갈되지 않는 자원을 기술과 경험으로 다듬어 꾸준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로 이어가는 일이 풍력발전의 다음 단계를 결정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