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경희 사진. 엄태헌
28년 동안 현장을 지켜 온 김병일 과장은 “기본을 지켜라, 기본이 곧 품질이다”라는 한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설비 하나하나를 들여다봐 왔다. 정비 절차의 한 줄, 체크리스트의 한 항목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꼼꼼함은 인적실수를 줄이는 체계로, 협력사와 고객사를 아우르는 신뢰로, 통계적 품질관리 기법을 활용한 고질 고장 근본 해결로 이어졌다. 그 결과 그는 마침내 발전설비 정비품질 분야 국가품질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함께 해결하는 품질문화”에 도전하고자 하는 그를 만나 보았다.
평택사업소 발전설비 품질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김병일 과장의 하루는 설비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설비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품질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로 채워져 있다. 각 작업 단계에서 절차가 정확히 이행되는지, 누락된 점검 사항은 없는지, 작업 전·중·후 품질검사를 통해 최종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작은 실수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 발전설비 특성상, “실수를 예방하는 것”이 곧 그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셈이다.
처음 현장에 발을 디뎠을 때, 김병일 과장은 설비 하나하나가 낯설고 두려웠다고 기억한다.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때, 선배들이 반복해서 들려준 말이 있습니다. ‘기본을 지켜라, 기본이 곧 품질이다’라는 것이었죠.”
시간이 흐를수록 이 문장은 그의 업무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기본 절차를 지키는 것, 기록을 남기는 것, 한 번 더 확인하는 것. 누구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이 행동들을 28년 동안 빠짐없이 지켜온 것이 바로 지금의 김병일 과장을 만든 힘이다.
이번 국가품질명장 선정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두 차례 도전과 탈락을 겪으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세 번째 도전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준 가족 그리고 함께 현장을 지켜온 선·후배와 협력사 동료들 덕분이었다. 김 과장은 이번 수상이 “혼자의 성과가 아니라, 그동안 함께 작은 개선을 거듭해 온 모든 사람의 결과”라며 공을 돌린다. 국가 차원에서 자신의 품질활동이 인정받은 것에 대한 기쁨과 함께,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그의 말에서 다시 한번 그가 가진 사명감이 느껴진다.
공적서에 정리된 경력과 수상 실적만 살펴봐도 그의 발자취는 뚜렷하다. 평택사업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설비 개선과 품질혁신 활동을 이끌어 왔고, 여러 분임조 활동과 교육, 지도 실적을 통해 현장의 품질역량을 함께 끌어올려 왔다. 국가품질명장 선정은 이러한 오랜 실천의 결과를 공식적으로 증명한 훈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김병일 과장이 손꼽는 대표적인 개선 활동은 ‘인적실수방지 체크리스트’ 개발이다. 과거 정비현장에는 정비절차서가 있었지만, 서술형 위주의 문서이다 보니 작업 과정에서 실수가 자꾸 발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한 실수처럼 보이지만, 발전설비에서는 볼트 하나가 제대로 체결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상 진동과 사고 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한 번은 볼트 체결 불량으로 설비에서 이상 진동이 발생한 사례가 있었고, 다행히 사전에 발견해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경험은 그에게 인적실수 예방 체계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는 정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작업 전·중·후 단계별로 필요한 확인 항목을 모두 뽑아내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부품 체결 상태, 사용 공구 점검, 잠금장치 확인 등 현장에서 실제로 자주 빠뜨리기 쉬운 항목들이 촘촘하게 담겼다. 체크리스트는 한 사람이 혼자 체크하는 방식이 아니라, 두 명의 정비원이 교차 점검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처음에는 “번거롭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비원들은 눈에 띄게 줄어든 실수와 더 안정된 설비 상태를 통해 그 효과를 체감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품질을 지키고 있다”는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 큰 변화였다.
협력사 품질교육과 품질지도 활동 역시 김 과장의 중요한 축이다. 그는 협력사 교육을 강당에서 끝나는 형식적 프로그램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 정비품질 절차의 의미와 인적 오류 사례, 예방 방법을 함께 설명했다. 잘못된 부분을 단순히 ‘지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이 과정이 중요한지, 어떤 사고를 막을 수 있는지를 사례와 함께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접근 덕분에 협력사 직원들도 품질을 “관리자가 요구해서 지켜야 하는 규정”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기본과 책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고객사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김 과장은 ‘함께 해결하는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객사가 제시하는 개선 방향과 현장의 현실적 제약이 부딪힐 때, 그는 현장부서·협력사·고객사가 한 자리에 모이는 협의체를 꾸려 여러 차례 회의를 이어갔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맞춰야 하는 부담도 크고 각자의 고집으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러한 대화 과정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내게 했다. 그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어도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품질은 단순한 개선을 넘어 신뢰와 성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력은 평택사업소만의 품질문화로 이어졌다. 품질문제나 작은 실수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걱정하며 숨기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공유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숨기지 않고 함께 해결하는 문화”,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공동의 고민”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평택사업소 구성원 모두가 자부심을 갖는 조직 문화가 되었다.
김병일 과장은 자신이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은 “통계적 품질관리 기법으로 중요 설비의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을 때”라고 말한다. 몇 해 전, 한 중요 설비에서 반복적으로 작은 고장이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부품 불량처럼 보였지만, 원인을 찾지 못해 정비가 반복되면서 고객사와 현장 모두에게 부담이 커지고 있었다. 그는 경험이나 감(感)에 의존하는 대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먼저 고장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발생 빈도와 조건을 분석했다. 파레토 분석을 활용해 고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찾아내고, 관리도를 통해 설비 상태의 변동을 시각적으로 확인했다. 그 결과 특정 운전 조건에서 부품의 마모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를 바탕으로 운전 조건을 조정하고 부품 교체 주기를 최적화했다. 이후 동일한 유형의 고장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설비는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품질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접근할 때 진정한 개선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 개선 사례는 2024년 전국품질분임조대회 개인 개선사례 부문에서 대통령 금상을 수상하며 대외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사례로 2025년 11월에는 국제대회(ICQCC 2025 TAIPEI)에서 Gold Award를 수상해, 국내를 넘어 국제무대에서도 한전KPS의 품질역량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김 과장은 “현장에서 묵묵히 해 온 품질활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뜻깊었다”며 이 성과를 함께 노력해 준 동료들에게 다시 한 번 공을 돌렸다.
후배들에게 그는 “기본을 지키는 태도와 꾸준함”을 가장 먼저 강조하는 선배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가장 위험하며, 품질절차는 지키라고 적어놓은 규정이 아니라 현장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다. 정비품질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기본을 지키는 작은 실천들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점을 몸소 보여주고 싶어 한다. 평택사업소에서 후배들이 두려움 없이 문제를 드러내고, 선배들이 기꺼이 경험을 나누는 문화 역시 이런 메시지 위에서 자라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김병일 과장은 세 가지 꿈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준비중인 기술사 자격증을 따는 것, 두 번째는 품질보증 국제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따는 것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품질관리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회사와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이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품질명장들이 계속해서 배출될 수 있도록 토대를 다지는 것이 국가품질명장으로서의 내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남기고 싶은 발자취는 화려한 업적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회사에서 “정비품질의 기본을 끝까지 실천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기본과 신뢰, 그리고 함께 해결하는 힘. 김병일 과장이 28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 온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앞으로도 한전KPS 품질문화의 든든한 기준점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