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빛나는 순간

날개에 실린 힘
바람이 만드는 전기

글. 한수빈 참고자료. 한국풍력산업협회, 산업통상부

풍차를 이용해 곡식을 빻고 돛단배로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던 시대, 바람은 생존이자 이동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었다. 오늘날에도 인류는 여전히 풍력으로 전기를 만들고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풍차와 돛단배, 풍력 터빈까지 노동과 이동 수단을 넘어 신재생 에너지로 진화한 바람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문명부터 미술사까지 분 바람의 영향력

인간이 처음 바람을 사용하기 시작한 도구는 풍차였다. 풍차의 정확한 발명 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기 7세기 페르시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보다 더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페르시아의 풍차는 수직축 형태로, 흙벽 안쪽에 세워진 나무 날개가 바람을 받아 곡식을 빻던 원시적 구조였다. 이 기술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퍼졌고 12세기경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럽식 풍차가 등장했다. 특히 풍차를 가장 잘 활용한 나라는 네덜란드였다. 국토의 절반이 해수면보다 낮았던 탓에 바람의 힘으로 물을 퍼내고 땅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15세기 이후 등장한 폴더(polder) 시스템1) 은 거대한 풍차를 통해 저지대의 물을 빼내며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곡물을 빻거나 기름을 짜고, 목재 제재 등 다양한 산업에도 활용되며 풍차는 네덜란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빛의 화가’라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 렘브란트의 작품2) 에 유독 풍차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 역시 그의 아버지도 방앗간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미술 평론가들은 렘브란트가 어릴 때부터 바람에 의해 날개가 돌아갈 때 생기는 명암을 관찰한 덕에 빛을 이용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평한다.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과 석탄이 동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며 풍차는 점점 구식 유물이 되었으나 19세기 말 전기 에너지가 새롭게 부상하자 몇몇 과학자들은 다시 풍차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중 덴마크의 폴 라 쿠르(Poul la Cour)가 세계 최초로 풍력발전장치를 개발했고,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에 사업용 풍차가 보급되기 시작하며 오늘날 풍력 발전의 시초가 되었다.

1) 폴더(polder) 시스템 : 해안선을 따라 둑(폴더)을 쌓아 바다를 막고 풍차로 물을 퍼내 간척지를 조성한 전통적 수자원 관리 및 농업 시스템 2) 렘브란트 <The Mill, 1641>

바다를 거대한 발전소로, 해상풍력 단지의 등장

코펜하겐 공항에 착륙할 때쯤이면, 바다 위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거대한 풍력 터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73년 오일쇼크로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덴마크는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풍력 기술 개발에 국가적 투자를 시작하며 세계 풍력 발전의 흐름을 이끌었다. 농부들이 직접 자금을 모아 ‘시민 풍력(cooperative wind)’이라 불리는 공동 풍력 터빈 모델을 만들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키는가 하면 1991년 덴마크 연안에 세계 최초의 상업용 해상 풍력단지 ‘빈데비(Vindeby)’가 들어서며 인류는 처음으로 바다 위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북해와 발트해의 완만한 해저 지형은 풍력 터빈 설치에 적합했고 일정하고 강한 바람은 발전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했다. 소음과 경관 문제로 설치가 제한적이었던 육상에 반해 해상은 대규모 단지 조성도 가능했다. 이후 터빈의 크기가 커지며 과거보다 수십 배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도 해상 풍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북해를 ‘유럽의 풍력 허브’로 만들었다. 현재도 덴마크는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풍력으로 충당하며 세계 최대 풍력 기업 베스타스(Vestas)와 오스테드(Ørsted)를 보유한 풍력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자연의 불확실성 속에서, 바람의 미래

우리나라는 1997년 제주 행원풍력발전단지에 600kW급 2대를 설치하며 1998년 8월 첫 상업 운전에 성공했다. 2000년대 들어 태백, 영덕, 제주, 영광 등지에 육상 풍력 단지가 조성되었고 2010년대에는 해상 풍력으로 영역이 확장됐다. 특히 2011년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가 착공되며 본격적인 해상 풍력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현재는 전남 신안, 전북 군산, 울산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해상 풍력 단지가 조성되고 있으며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 중 하나로 2030년까지 해상풍력 설비용량을 14.3 GW 내외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풍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가 발전시켜가며 사용한 오래된 에너지 형태이자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 그러나 바람은 인간의 뜻대로 불지 않으며 자연의 일부이기에 언제나 불확실성을 품고 있다. 설치 비용이 높고 해상풍력의 경우 유지 보수 또한 어렵다. 저주파 소음, 조류 충돌, 어업권과의 갈등처럼 환경과 사회적 논란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풍력발전은 단순히 바람을 이용하는 기술을 넘어, 안정적인 전력으로 정착하기 위한 과정에 놓여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터빈의 위치를 인공지능이 예측하고, 풍속의 패턴을 데이터로 분석해 효율을 최적화하는 등 고도화된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선언한 지금, 바람은 이제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쥔 중요한 열쇠이자 새로운 산업의 토대다. 풍차에서 터빈으로 이어진 긴 여정 속에서 바람은 늘 인류와 함께 진화해왔다. 콜럼버스가 바람의 힘을 믿고 미지의 대륙으로 항해하던 그때처럼 인간은 다시 바람과 함께 손을 맞잡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