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진구 LG경영연구원 경영연구부문 수석연구위원
사일로(Silo)란 보통 가루 형태의 재료를 쌓아 보관하는 원통형 탑 모양의 대형 곡식 저장고를 이르는 말이다. 기업경영에서 말하는 ‘사일로 현상’은 각 부서들이 타 부서와 담을 쌓고 서로 협조하지 않는 모습을 이르는 말로 과도한 부서 이기주의에서 파생되는 소통과 교류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 모습이 마치 시골 들판에 서로 떨어져 우뚝 서 있는 사일로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일로 현상은 단순한 소통 문제를 넘어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 복합적 조직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조직 사일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부서 간 협력과 스피드를 떨어뜨리고 업무 프로세스 공백이나 병목을 유발한다. 조직 내 불필요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혁신의 조직문화 구축을 저해하는 것도 문제다. 나아가 구성원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고 조직 역량을 후퇴시키며 성과를 갉아먹는 위협 요인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사일로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발생했더라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서로 다른 부서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도록 하는 Cross-functional Team을 구성하기도 하고, 공동 목표를 설정하거나 역할과 책임을 공유하기도 한다. 협업을 촉진하는 다양한 제도 도입과 IT 시스템 구축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직 사일로 현상의 발생 원인에 주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토마스 컬 교수는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조직 사일로는 다양한 원인이 얽혀 있는 복합적 이슈이므로 일률적 해결책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1) 근본 원인에 따라 해결책도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1) Pyushi Shah & Thomas Kull, 'Three types of silos that stifle collaboration', March 17. 2025, HBR
조직 사일로는 흔히 부서 간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이 부서 내부 정보만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겉으로 보여지는 비슷한 양태와 달리 원인을 들여다보면 조직 생리와 인간 심리 관점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크게 보면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조직 전체의 성과나 전사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부서의 목표를 제일 우선시함으로써 발생하는 사일로가 있다. 흔히 말하는 부분최적화의 오류에 해당한다. 개별 사업부가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사업부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협력하지 않고 정보도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심지어 성과를 가로채고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기능 부서에서도 프로세스 앞뒤 부서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조직 성과만을 앞세우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영업팀이 제조팀과 협의 없이 판매 목표를 설정하거나, 연구개발 부서가 마케팅과 협의 없이 기술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는 일이다.
이와 같은 사일로는 대개 목표 설정 및 보상 제도가 전사적으로 잘 정렬되어 있지 않아서 발생한다. 따라서 해결방안도 부서 간 사전 협의를 통해 목표가 합의되고, 인센티브 제도도 전사 이익에도 부합하도록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영업/마케팅과 생산/물류 부서 간 사일로는 S&OP 회의가 실질적으로 운영되면 해소될 수 있다. 운영, 재무, HR 등의 목표 수립도 전략의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렬될 때 부서 간 사일로를 방지할 수 있다.
둘째, 특정 부서가 타 부서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과도할 때 사일로가 발생한다. 정보를 독점하고 과도하게 공유를 제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런 부서 이기주의는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저하에 직결될 수 있다. 시행착오와 비효율적 반복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성과 저하에 대해 상호 책임을 전가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심하면 조직 내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유형은 스스로 회사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부서의 엘리트주의 심리가 근본 원인이다. 일반적으로 전략, 기획부서나 R&D, 생산, 영업 등 사업 근간 부서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다른 부서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외부 유출을 지나치게 우려해서 아예 정보 공유를 제한하기도 한다. 해결을 위해서는 지식과 전문성에 대한 독점욕과 타 부서 역량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심리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 부서 간 교류를 제도적으로 강제하거나 직무 순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더디더라도 조금씩 조직 내 다른 직무에 대한 존중감과 전문성, 기여도를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해 나갈 때 불필요한 우월의식을 해소할 수 있다.
셋째,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사일로도 있다. 요즘과 같이 기술적 발전이 매우 빠르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많은 직원이 자신들 직무의 가치와 미래 성장 경로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다. 특히, 생성형 AI 기술의 급속한 전개와 확산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핵심 직무로 각광 받았으나 쉽게 AI로 대체가능한 직무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현장직이나 생산직도 예외는 아니다. 전기차의 등장, 로봇 기술의 발전 등으로 기존 현장의 경험과 역량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자리 상실에 대한 큰 불안을 느낀다.
심리적 불안감이 부서 내에서 공유되어 만들어지는 사일로는 가장 해결이 어렵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혁신과 변화에 대한 저항도 커지게 된다.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심지어 데이터를 감추거나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불안감이 만든 사일로 대응에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경영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협력과 소통이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고, 공유와 교류가 안겨주는 이점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조직 사일로 해결을 위해서는 원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 관점에서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단절이라는 현상만을 해결하고자 하는 단기적, 일률적 방책으로는 큰 개선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동기와 심리에서 비롯되는 복잡하고도 심오한 조직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사일로 해소를 위해 시도되어 온 조직 구조 변화(Cross-functional Team, 매트릭스 등), 사무 환경 재구성(칸막이 제거, 비공식 접촉 유도 등), 공동 목표 및 역할과 책임의 중첩 설정, 직무 순환과 인력 교류, 상호 존중과 이해의 조직문화 구축, 심리 상담을 강조하는 리더십 등 다양한 방안들도 나름의 유용성과 효과가 있다. 다만 조직 사일로가 발생했다고 무턱대고 이런 방안들이 시도되기보다 원인부터 정확히 이해하고 각 상황에 맞는 최적의 조합을 찾는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 그래야 일시적 해결이 아닌 조직 체질의 근본적 개선까지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