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봄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다. 우리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생명력 가득한 활기찬 봄날 즐겁게 떠나기 좋은 곳이 있다. 천년 목사 고을 나주가 주인공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여행객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연둣빛 나주로 떠나보자.
나주시는 인구 11만 남짓한 도시다. 하지만 120여 년 전만 해도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全羅道)’라 불렀을 정도로 나주의 위상은 대단했다. 조선시대 ‘작은 한양’이라 불리며 흥왕했으나 구한말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더니 일제강점기엔 나주읍성과 사대문마저 허물어졌다. 천만다행, 현대에 와서 읍성과 사대문이 복원되었다. ‘나주읍성 고샅길’은 금성관을 시작으로 사대문을 따라 이어진 3km 구간이다. 천년의 역사와 이야기를 듣고, 보고, 체험하기에 제격이다.
길의 시작은 금성관에서 출발한다. 금성관은 조선 성종 때 세운 나주목 객사 건물로 그 규모가 호기롭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칸 간격이 넓고 높이가 높아 위엄이 느껴진다. 힘찬 붓놀림이 인상적인 현판은 원교 이광사가 쓴 것이다. 해서, 초서, 전서, 예서에 능통했던 그는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에 견줄만한 서예가다.
솟을대문 사이로 한옥의 멋이 흘러나오는 나주목사내아는 1825년에 지어진 나주목사의 관사였다. ‘거문고 소리에 학이 춤추는 곳’이라 하여 ‘금학헌’이라 한다. 금성관이 기골 장대하다면 내아 금학헌은 아담하다. 마루에 앉아 소담한 이야기꽃을 피우기 좋은 이곳은 현재 숙박 공간으로 활용된다.
나주읍성은 조선시대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처 지금과 같은 석성이 되었다. 고샅길에서 복원된 세 문을 차례로 마주한다. 먼저 서울 숭례문이 연상되는 남고문과 옹성을 둘러 방어력을 높인 동점문, 구한말 동학농민군과 맞서 싸운 서성문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3.7km를 완주한 셈이다.
🔍 전남 나주시 금성관길 8 금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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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음식의 즐거움을 빼놓을 수 있을까? 나주읍성 고샅길을 걸었다면 진한 곰탕 국물에 빠져볼 일이다. 곰탕은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른 귀한 음식으로 황해도의 해주곰탕, 경상도의 현풍곰탕, 전라도의 나주곰탕이 유명하다. 곰탕은 우족과 소꼬리, 양을 재료로 국물을 오랜 시간 고아낸다. 곰국에 밥을 말아 국밥식으로 낸 것을 곰탕이라 한다.
나주곰탕은 나주 오일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뒤 나주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나주곰탕의 특징은 맑은 곰탕 국물과 무, 파, 마늘을 많이 넣어 고기 누린내가 없다. 국물이 맑은 이유는 쇠뼈를 적게 사용하고 쇠고기 양지와 사태 등 좋은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곰탕은 주문과 함께 토렴을 거친 뒤에 고기에 계란지단과 대파를 올려 나온다. 최소한 국밥을 소울푸드라고 여긴다면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진한 국물 맛에 금세 빠져들 것이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국물에 촉촉하고 부드러운 고기 맛이 일품이다. 새콤하게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의 궁합도 환상적이다.
나주곰탕거리에는 금성관 주변에 조성돼 있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하얀집’과 1960년부터 3대째 맛을 지키고 있는 ‘노안집’이 유명하다. 노포마다 세월을 말해주듯 커다란 가마솥들이 부뚜막에 걸려있고 구수한 곰탕 냄새가 진동한다. 슬쩍 엿본 주방 한편에는 고기 고명과 계란지단, 대파 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밀려오는 손님 덕분에 토렴하는 이모님들의 손놀림이 쉼 없이 분주하다.
🔍 전남 나주시 금계동
나주곰탕거리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를 달리면 도래마을에 닿는다. 민속자료로 지정된 19세기 가옥들이 여럿 모여 있는 이 마을은 여전히 건재하다. 수백 년 된 고택은 박제화되지 않고 대를 이어 후손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 마을의 고택들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후원금으로 개보수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옛것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편리성도 외면하지 않는다. 홍기헌 가옥 옆 오솔길을 10여 분을 오르면 마을을 안온하게 감싼 주산봉 기슭에 자리한 계은정에 닿는다.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아 망중한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도래마을에서 마음에 ‘쉼표’하나 살포시 찍은 뒤 인근에 있는 전라남도산림연구원으로 향한다.
전라남도산림연구원은 산림자원의 시험과 연구 목적으로 조성된 숲이지만 몇 해 전부터 하늘을 뒤덮은 메타세쿼이아 길이 인생사진 명소로 알려지면서 나주를 찾은 여행객들이 꼭 찾는 핫플에 등극했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원 내에는 다양한 숲길과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게다가 건강 측정 장비와 아로마테라피 등 맞춤형 치유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한나절 숲속 힐링을 즐겨보길 추천한다.
🔍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193 도래마을
🔍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36-6 전라남도산림연구원
📞 061-336-6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