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KPS

‘‌아주 보통의 하루’
작은 성취가 주는 즐거움
소확행에서 아보하로 가는 우리 사회

글. 고건 심리학칼럼리스트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한 하루라도, 괜찮다고 느껴본 적 있는가?
때때로 작고 조용한 성취가 우리에게 더 깊은 만족을 준다. 몰입의 순간, 뇌는 ‘잘했어’라는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삶의 동력을 다시 느끼게 된다. 반복되는 무기력 속에서도, 아주 평범한 하루에 다시 기대게 되는 이유. 그것은 작고 느린 기쁨이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일지 모른다.

지친 마음이 바라는 하루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인 소확행 대신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가 많이 쓰이고 있다. 아보하는 특별한 사건이나 성취 없이도 평범하고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필자 역시 ‘아주 보통의 하루’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오늘 하루 주어진 일을 잘 마무리하며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보내기를 바란다. 때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신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는 이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아보하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커다란 목표 앞에 무너졌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어느샌가 작은 성취를 이루려는 시도조차도 자신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기에 성취감 자체를 배제하고서라도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살아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작은 기쁨이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뇌 깊은 곳에서 오는 미세한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작은 즐거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보통의 하루 속에서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결과를 맞이하였을 때, 우리 뇌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며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신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는 이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아보하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뇌를 움직인다

우리 뇌에는 ‘보상경로’라 불리는 신경회로가 있다. 보상경로는 뇌 깊숙한 곳에 있는 SN/VTN(흑질/복측피개부)에서 시작해, 줄무늬체(조가비핵 포함), 눈확이마겉질(OFC), 그리고 앞띠겉질(ACC) 같은 부위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회로는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고, 동기를 얻고,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시스템이다. 뇌는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경험할 때, 이 보상경로를 통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뇌에 “이 행동은 좋은 거야, 다시 해!”라는 신호를 보내며, 우리가 성취감을 느끼고 삶에 긍정적 에너지를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이 보상경로는 상황에 따라 그 기능이 약화하기도 한다. 특히 좌절이나 무기력, 우울감이 지속되면 조가비핵(putamen)과 눈확이마겉질(medial OFC) 사이의 연결성이 약해져, 작은 즐거움에 반응하고 그 순간에 머무는 일조차 버거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아주 보통의 하루’에 더 큰 기대를 걸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고 작은 성취를 경험할 때, 뇌의 보상경로는 다시 활발히 작동하기 시작한다. 특히 집중과 몰입 상태에서 얻는 만족감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키며, 반복적인 행동의 동기를 강화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몰입 경험을 ‘flow(몰입)’라고 부른다. 몰입은 우리가 감정을 잃지 않고,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경험이다.
재밌게 무언가를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흐른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레고들로 작품 만들기에 있어 수많은 브릭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는 데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게 된다. 어느 순간 조각들이 구조물이 완성되고 구조물이 또 다른 구조물과 연결되며 하나의 완전체가 되었을 때 큰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레고라는 세계에 흠뻑 빠져 실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음에도 그만두고 싶지 않은 그 경험 바로 그것이 몰입이다.

뇌는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경험할 때,
이 보상경로를 통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뇌에 "이 행동은 좋은 거야,
다시 해!"라는 신호를 보내며,
우리가 성취감을 느끼고
삶에 긍정적 에너지를
느끼게 만든다

# 작은 성취의 힘
# 소소한 행복에서 아주 보통의 하루로
# 예상치 못한 기쁨, 도파민

# 도파민과 보상경로
# 몰입이 주는 삶의 에너지
# 쾌락보다 깊은 만족

몰입,
삶의 동기를 되살리는 열쇠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는 몰입(flow)의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몰입은 개인이 인지하고 있는 도전과 개인의 능력 조화가 몰입에 있어 중요하다고 하다. 만약 도전하고자 하는 과제의 수준이 개인의 능력보다 월등히 높다고 인지하면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고, 반대로 과제의 수준이 개인의 능력에 비해 너무 낮다고 인지하면 무관심하게 되거나 지루함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도전과 능력 사이에서 균형이 맞아야 최적의 몰입 상태가 이루어질 수 있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런 도전-능력의 균형 외에도 몇 가지 조건들이 함께 갖춰지면 좋다.
우선, 명확한 목표가 있는 활동이 몰입을 더 쉽게 유도한다. 막연히 “그냥 해본다”보다는 “이 한 문단만 써보자”, “이 작은 부분만이라도 완성해 보자”처럼 작은 목표가 있는 것이 좋다.
또한,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는 활동일수록 몰입이 잘 일어난다. 예컨대, 요리나 퍼즐, 그림처럼 내가 한 행동의 결과가 바로 확인되는 작업이 그런 예다.
마지막으로, 방해받지 않는 환경이 중요하다. 스마트폰 알림, 소음, 주변의 간섭 등은 몰입의 흐름을 쉽게 끊어버릴 수 있어 짧은 시간이라도 몰입만을 위한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 보는 것이 좋다.
크고 깊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몰입을 경험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떠한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몰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의 결과로 업적이 따라온 셈이다. 스스로 창의적이려고 애쓴 것도 아니고, 부와 명예에 대해 의식적으로 얻고 싶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하고 싶고,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여겨진 일들을 자발적으로 몰두한 것이다. 몰입은 그렇게 우리를 ‘성과’가 아닌 ‘의미’로 이끄는 상태다.
이러한 몰입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순간적인 즐거움보다는 지속적인 만족이 주는 힘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행복을 오래 남기는 감정, 만족

만족과 쾌락의 차이는 결국 ‘행복한 삶’과, ‘쾌락의 삶’의 차이이기도 하다. 쾌락은 순간적이고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만족은 그렇지 않다. 만족은 도전에 맞서야 하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며 기술과 노력을 총동원할 때 얻어지는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과 그 과정에서의 망설임이 뒤따를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통과해야 얻어지는 감정이기에 만족은 깊고 오래 남는다.
어린 시절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떤 꿈을 꾸기 전에 현실성을 따져보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그리고 꿈을 자유롭게 쉽게 꾸는 것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꿈을 쉽게 꾸는 아이들이 부럽다. “나도 저러한 시간이 있었는데···”라며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꼭 거창한 목표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작고 사소한 성취, 소중한 하루의 몰입,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작은 꿈들이 모여 언젠가 나의 삶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 빛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작고 사소한 성취,
소중한 하루의 몰입,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작은 꿈들이 모여
언젠가 나의 삶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
빛이 되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