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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영선 작가의 신념과 철학

글. 장하린   사진. 이성원

나무에 새겨진 글씨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자, 후대에 전하는 메시지다. 염영선 작가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서각으로 재현하며 그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서각을 통해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젊은 세대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전북 고창에 위치한 그의 공방에서 염 작가를 만나 서각에 담긴 그의 철학과 작업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안중근 의사님의 정신을 새기고 싶었습니다.”

염영선 작가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서각으로 새기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총 59점이고, 그중 31점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라는 글씨는 사형 직전 감옥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죠.” 그는 이 작품이 순국직전 안중근 의사의 공판정 왕래에 경호를 맡았던 일본 헌병 지바도시치 간수에게 써서 준 것으로 일본에서 보관되다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후손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온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는 일본에서도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의 유묵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그래서 유묵을 서각으로 새겨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유묵을 새기는 과정,
철학을 담다

서각은 단순한 조각 작업이 아니다. 글씨의 의미를 이해하고, 적절한 목재를 선택하며, 수십 번의 조각과 염색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유묵은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이 있습니다. 글씨의 크기와 분위기에 맞는 목판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특히, 서각 작업은 칼과 망치를 사용해 하나하나 새겨야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계로 작업하는 현대 서각과 달리, 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오직 칼과 망치만 사용해서 새기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는 글씨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원본 크기를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기에, 작품의 비율과 구성은 작가의 경험과 철학에 따라 결정된다. 유묵을 서각으로 새기는 작업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안중근 의사님의 글씨는 단순한 서예 작품이 아닙니다. 사형이 임박한 순간에도 철학과 신념을 담아 쓴 글씨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안중근 정신을 오늘날에 전하다

염영선 작가는 단순히 유묵을 서각으로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근 이를 알리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작년에는 이곳 공방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14주기 추모 행사를 진행했으며, 올해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년을 맞아 추모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행사를 열었는데, 관객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이번에 감사하게도 한빛원자력본부에서 도움을 주셔서 순국 115주기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조명하는 1부 강연과 2부 음악회가 열린다. “전문 가수가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작은 음악회지만,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특히 올해는 2부 음악회에서 영·호남 문화 교류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통영과 거제에서 온 참가자들이 시 낭송과 음악 발표 등을 선보이며, 문화 교류와 음악 교육을 겸한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중근 서각 박물관이 목표입니다”

염영선 작가는 앞으로 더 많은 유묵을 서각으로 남겨 ‘안중근 서각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현재 확인된 유묵 59점을 모두 서각으로 제작하여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이를 위해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며, 후세에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1909년 2월 7일,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은 뜻을 모아 ‘단지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왼손 약지를 자르고, 피로 ‘대한독립’이라는 글씨를 썼어요. 태극기에 새겨진 그들의 결의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죠.”

그는 이러한 역사의 순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생생한 경험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를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지만, 그의 강한 의지와 결단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서각을 통해 그 정신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에게 서각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증거이며,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기는 매개체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새기는 그의 손길에는 단순한 예술을 넘어, 독립운동 정신을 후세에 전하려는 깊은 신념이 담겨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새기는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