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수빈
참고도서.
시라이시 다쿠 <처음 읽는 2차 전지 이야기>,
이미하 <볼타가 들려주는 화학전지 이야기>
시계나 리모컨, 장난감 등 일상 속 작은 기기가 움직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건전지’다. 수많은 전자기기의 전력 공급원 역할을 하는 작은 건전지는 1.5V의 표준 전압을 가진다. 왜 하필 1.5V일까? 삶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자리한 건전지의 역사를 따라가보자.
18세기 말, 이탈리아 과학계는 하나의 쟁점을 두고 수년째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부학자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가 동물의 몸에 미세한 전류가 흐른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개구리를 해부하던 중 죽은 개구리 다리에 나이프를 가져다 댔더니 움찔했다며, 동물 몸속에 전기가 있고 이 전기가 근육을 움직인다는 ‘동물전기’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물리학자 알레산드로 볼타(Alessandro Volta)의 생각은 달랐다. 실험에 사용된 금속 사이에 전류가 통한 것이라 주장하며 그들의 논쟁은 무려 20년이나 지속됐다. 볼타는 갈바니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갖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그는 갈바니의 개구리 실험 모델에서 개구리를 제외한 뒤 아연과 은(혹은 구리), 소금물에 적신 종이를 겹겹이 쌓아 올린 기둥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는데 기둥의 아래위에 서로 다른 금속을 오게 한 뒤 전선을 연결하자 마침내 전류가 흘렀다. 기나긴 논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순간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터리가 바로 세계 최초의 화학전지인 ‘볼타 전지(Voltaic pile-Voltaic cell)’다. 볼타 전지로 얻은 전기는 전기 분해, 전자기 유도 등 전기 현상을 연구하는 데 활용됐고 당시 정전기 연구에만 머물러 있던 전기 연구 분야를 대폭 발전시키는 초석이 된다. 오늘날 전압의 표기인 ‘볼트(V)’ 역시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금속판과 전해질을 층층이 쌓아 만든 단순한 구조였지만 전기를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건 혁명에 가까웠다.
볼타전지가 발명되고 20년 후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존 다니엘(John Daniell)에 의해 1.1V의 전지가 발명되었지만, 이는 여전히 전해질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습식전지’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전지의 원형이 된 건 1866년 프랑스의 화학자 조르주 르클랑셰(Georges Leclanché)에 의해서였다. 그가 만든 1.5V의 전지는 이산화망간과 아연을 활용해 안정적인 전압을 제공했고 전보 기기나 벨, 휴대용 조명 장치에 사용되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880년대 후반, 독일의 의사이자 발명가인 카를 가스너(Carl Gassner)에 의해 마침내 세계 최초의 건전지가 개발된다. 전해질에 석고와 같은 물질을 사용해 젤 형태로 고정 시키며 액체 유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는 특허 받은 이 제품을 대량 생산했고 1.5V의 건전지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5V가 건전지 전압의 표준이 된 이유는 화학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출력과 효율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금속과 전해질의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발생시키는데 가장 흔한 망간 건전지와 알칼리 건전지는 아연과 이산화망간을 사용해 약 1.5V의 전압을 만든다. 이는 배터리의 수명과 효율을 고려할 때 가장 적합한 전압일뿐더러 손전등, 시계, 리모컨, 장난감 등 저전력으로 구동할 수 있는 전자기기도 충분히 작동시킬 수 있다. 직렬로 연결하면 3V, 6V, 9V로 전압을 조정할 수 있기에 제조업체들은 이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전자기기 산업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건전지 전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지는 충전이 불가능한 1차 전지와 충전이 가능한 2차 전지로 나뉜다. 건전지는 1차 전지에 속한다. 최근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차 등 고용량 배터리가 필요한 기기가 늘어나며 일회용 건전지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여기에 환경 문제와 지속가능성 문제까지 더해지자 건전지 업계는 친환경 기술을 새로운 돌파구로 모색하고 있다. 재활용 기술을 적용한 친환경 건전지를 출시하는가 하면 충전 가능한 1.5V 리튬 건전지를 개발해 알칼리 건전지보다 높은 에너지 밀도를 제공함과 동시에 재사용이 가능케 하기도 한다. 일부 기업은 수은과 카드뮴 등 유해 물질을 포함하지 않는 친환경 건전지를 개발했다. 또 다른 기업은 폐건전지 수거 팝업스토어 등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자기기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으며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거듭한 건전지. 작은 전압이지만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은 만큼 친환경 기술과 결합해 미래에도 전력 공급의 한 분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